[카카오AI리포트] 오승일
젊은 톰 크루즈(Tom Cruise)가 패밀리 레스토랑 T.G.I. 프라이데이스(T.G.I. Friday’s)에서 바텐더로 열연했던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바텐더 톰 크루즈의 극중 이름이 브라이언 플래너건(Brian Flanagan)이라는 것은 그의 열혈 팬도 기억하기 쉽지 않다. 플래너건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얼마 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SUMMIT) 콘퍼런스장이었다. 출장 차 참석한 AI 서밋은 잡지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의 AI 리더들이 디지털 경제, 에너지, 의료, 통신, 미디어 등 산업 전반에 대한 인공지능(AI) 적용 신기술 트렌드에 대해 매년 발표하는 곳이다. 때마침 강연자 명단에 T.G.I. 프라이데이스가 있었고, 그 발표에서 다시 플래너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세계 60개국에서 99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외식업체 T.G.I. 프라이데이스의 셰리프 미티아스(Sherif Mityas) 최고 고객경험 책임자(chief experience officer, CEO)는 이 자리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제1순위로 하는 회사 경영 방침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획되고 운영되고 있는, AI를 접목한 머신러닝 탑재 바텐더 ‘플래너건’에 대해 발표했다. AI 바텐더 ‘플래너건’은 매장에 방문한 고객과 일상적이면서 특별한 대화를 통해 고객의 음료 취향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를 통해 유일무이한 단 한 명의 고객만을 위한 스페셜 칵테일을 그 자리에서 제조해 제공한다. 오늘 방문 목적은 무엇인지, 누구와 함께, 어떤 날씨에, 몇 시에,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지 그리고 대화의 분위기에 따라 제공되는 칵테일이 모두 다르다. 이 모든 서비스 정보는 디지털로 저장돼, 다음 방문에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로 다시 활용된다. ‘플래너건’ 덕분에 실제 주류 매출은 25%나 증가했고, 차별화된 경험에 만족한 고객들의 팁(tip)까지 늘었다고 한다.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고객의 수요 창출은 고객과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대표적인 방법은 SNS와 판매 정보 관리(POS) 시스템이다. 외식업체는 매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고객 소통 정보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고객에게 맛있고 특별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로 보답하는 셈이다. 이 레스토랑의 바텐더는 AI이다.
최근 들어 식품에 대한 관련 이슈로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뒤따르고 있다. 식품 안전 관리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식품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품산업은 원료의 재배·수확부터 제조, 유통, 소비 단계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며, 단계별 과정마다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잠재적 위험 요인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 요인들을 식품 공급 사슬 각 단계에서 빠르게 확인하고 판단하여 사고를 제어하기 위해 식품 전 주기에 대한 품질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스마트센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AI가 탑재된 스마트센서를 이용해 식품 전 주기의 유통 환경을 감지하고 실시간으로 식품의 품질 정보를 예측한다. 여기에 기상정보, SNS 메시지, 도로 교통량, 휴대폰 통화량, 인터넷 검색 내역 등의 빅데이터 정보와 사물인터넷(IoT)으로 수집되는 다양한 정보를 결합해 식품 사고에 대한 신속한 예측과 확산 대처 방안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국가식품안전지도(national food map)의 구축을 진행 중이다. 스마트센서는 식품의 전 주기에 대한 유통 환경 정보 계측, 모니터링, 품질 정보 예측, 상황 제어 등의 여러 역할을 한 번에 수행한다. AI를 기반으로 첨단기술을 식품산업에 융합한다는 점에서 식품 안전 관리를 위한 스마트센서는 IT 융합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기술 융합의 중심은 단연 AI이다.
현재 AI의 전반적인 연구 동향은 이미지를 이용한 딥러닝의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식품 분야에서도 AI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바로 식품의 영상 정보를 이용해 식품의 내부 품질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팀은 과채류의 신선도 및 부패 정도와 같은 안전성을 체크할 수 있는 초분광(hyperspectral) 센서를 개발했다. 이 센서는 세분화한 빛 파장의 특정 영역을 식품에 비추어 반사 ・ 투과되는 영역을 분석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초분광 기법을 활용한다. 초분광 영상 시스템으로 분석하여 획득할 수 있는 생물체 고유의 빛 분자 정보는 식품 신선도와 부패도 측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초분광 영상에 GPU 성능의 향상으로 각광받는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 CNN)과 순환 신경망(recurrent neural network, RNN) 같은 기법을 활용해 식품의 내부 품질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유해물질을 실시간으로 자동 판단하며, 나아가 식품 안전사고 예방에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식품 유통에서 AI가 담당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수요 예측이다. 판매자는 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간의 경험 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문량을 결정하며, 예측된 수요에 따라 물류망을 통해 식품을 공급받는다. 만약 여기서 수요 예측이 잘못된다면 식품의 품귀 또는 손실로 연결되며, 식품의 품귀 또는 손실이 반복될 경우 품질의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글로벌 편의점 체인점인 세븐일레븐(7-Eleven)은 편의점의 특성상 하루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발생하는 페타바이트(PB)급 규모의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한다. 물론 수요 예측에는 AI를 이용한다. 특히 AI를 이해관계에 맞게 적용하는 점이 눈에 띈다. 소비자에게는 개인 맞춤(personalization), 점포에게는 수량 결정·수요 예측·시즌 트렌드·기상정보에 기반한 재고 최적화(inventory optimization), 판매자에게는 소비자 요구가 만족될 수 있는 통찰(consumer insights)을 위하여 AI를 적용한다.
2018 AI 서밋 SF에서 만난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셉 시로시(Joseph Sirosh) CTO는 ‘Cloud AI, Cloud API, Natural Interface’의 3가지 AI 트렌드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AI가 빠르게 대중에게 민주화(democratization)되고 있다”고 부언했다. ‘AI의 민주화’. AI 관련 강연에서는 꼭 한 번씩 접하는 용어다. 이 말의 바탕에는 ‘AI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편리하고 값싸게 사용할 수 있게 AI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관련 지식이나 기술, 많은 자본이 있어야 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AI는 이미 우리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일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미 AI 의사로 유명해진 IBM의 닥터 왓슨(Watson)은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셰프 왓슨이 된 것이다. 셰프 왓슨은 1만여 개 레시피를 미리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다양한 재료와 조리 방법을 추천한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독일 가전업체 밀레(Miele)의 전자레인지에 채용되었고, 소비자의 음식 취향을 파악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추천해주고 있다.
MIT의 AI 픽투레시피(Pic2Recipe)는 요리 연구가와 비슷한 일을 한다. 음식 사진을 픽투레시피에게 보여주면 사용된 재료를 판단하고 다른 레시피 10개를 보여준다. 유니레버(Unilever)의 식품 브랜드 크노르(Knorr)는 고객이 현재 자신이 보유한 식재료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가지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와 레시피를 알려준다. 일본 기린맥주는 양조와 발효 공정을 담당했던 장인 대신 AI를 내세워 최적의 맛, 향, 색상, 알코올 도수를 결정한다. 잘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AI가 있는 반면 다이어트에 능숙한 AI도 있다. 구글 AI 아이엠투칼로리(Im2Calories)는 식탁 사진을 보고 이미지 패턴 인식 기법을 이용해 칼로리 정보를 기록한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AI는 훨씬 더 많이 민주화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식품산업에 적용한 AI와 다른 산업 분야에 적용한 AI가 다른 점은 산업 특성에 따른 적용 사례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연구, 조직의 성공을 위해 AI를 도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과연 AI가 결정한 의사를 기업이 그리고 소비자가 의구심 없이 선뜻 신뢰할 수 있을까. 분명히 AI가 유용하다는 것은 모두 인지하고 실제로 산업에 활용하고자 하지만 AI가 내린 결정을 신뢰할 수 있는지 다시 판단하는 과정 때문에 활용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AI를 통한 의사결정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AI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여러 AI 리더는 AI 도입 목적이 AI 그 자체로 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한다. AI를 사용하면서 달성할 목표가 무엇인지,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정하고 ‘지성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AI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유행에 이끌려 무작정 투자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그리고 소속된 조직의 현재 상황에 맞게 AI 도입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충분한 양의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 GIGO라는 말이 있다. GIGO는 Garbage In Garbage Out의 약자로, 터무니없는 입력 데이터는 터무니없는 출력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의미다. 즉 유용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유용한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AI, 특히 머신러닝은 학습한 데이터에 의존하는 지극히 확률적인 툴이다. 따라서 충분한 양의 정확한 데이터 확보가 우선이다. 비정형 데이터를 정제하는 것도 진보된 머신러닝을 위한 방법이다.
셋째, AI가 결정한 의사를 사용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설명이 가능한 AI(eXplainable AI, XAI)는 AI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XAI 기반의 인터페이스 도입은 AI가 내린 결정에 신뢰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
AI는 유용하다. 그리고 AI는 만능이 아니다. 상반되는 두 명제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AI를 맛있게 그리고 스마트하게 이용해 먹으면 된다. ‘AI is the New Normal.’ 이것이 바로 AI 관련 연구자로서 AI 민주화 시대에 대응하여 표방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글 | 오승일 dr51@kfri.re.kr
의공학 기반의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식품 안전유통을 위한 설명가능 인공지능(explainable artificial intelligence, XAI) 기반의 식품 품질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더 쌓아 인공지능을 스마트센서와 사물지능통신에 융합해 식품 분야의 초연결사회 구현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참고문헌
*1 참고 | 김병삼, 〈U-Food 스마트 품질 모니터링 기술〉, 《정부연구개발 우수성과 사례집》, 2012. 11.
*2 논문 | Sigernes, F. et al, 'Proposal For A New Hyper Spectral Imaging Micro Satellite : Svalbird. Small Satellites for Earth Observation', 2005.
[카카오 AI리포트] Vol. 15 (2018년 12월 호)는 다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Special Topic
01. 최은필 | 유네스코에 초청된 카카오의 AI 윤리
02. 최은필 | 유네스코 AI 윤리의 토대가 될 ROAM
[2] In-Depth
03. 김우영 | 스마트 홈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04. 오승일 | 맛있는 인공지능 이야기, 스마트하게 먹기 위한 방법
05. 정구민 배승주 이재민 최명근 최현준 | 자율주행, 스마트 카를 위한 딥러닝의 진화와 확산의 허들
07. 양성일 | 게임산업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가능성
08. 김수정, 심지은 | 인공지능, 치안의 일선에 서다
[3] Kakao Inside
09. 이준목 | 인공지능 기반의 고객센터를 향한 첫걸음의 시작
10. 최은필 | 카카오, 유해 콘텐츠 차단을 위해 AI 방패를 펼치다
11. 최은필 | 문제 해결을 위한 머신러닝 오픈 플랫폼, 카카오 아레나
[4] Tech & Conference
12. 모종훈, 오형석 | 카카오 OCR 시스템 구성과 모델
13. 이수경, 홍상훈 | 아날로그 기상 데이터를 OCR로 디지털화할 수 있을까?
14. 서가은, 이다니엘, 이동훈 | EMNLP 2018 참관기
15. 김수정, 심지은 | 2019년 주요 AI 콘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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