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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요리사들이 경쟁하는 미식의 도시 파리. 그곳에서 으뜸이라고 평가받는 셰프가 있습니다. 영화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오귀스토 구스토라는 남자인데요. 구스토의 식당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5개월 전에 예약해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죠.
영화 <라따뚜이>는 구스토의 식당이 한 차례 미끄러진 뒤 요리하는 생쥐 '레미'와 초보 요리사 '링귀니'가 이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승승장구하던 레스토랑에 무슨 일이 생겼냐고요? 평점이 별 5개에서 4개로 줄어들며 일류 식당으로서의 명성이 흔들린 겁니다. 구스토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사망하고 마는데요. 별 4개도 대다수 요리사가 평생의 꿈으로 삼을 만한 업적이지만, 줄곧 정상에 있었던 그에게는 추락과 다름없었던 것이죠.
영화에서 구스토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평점은 현실의 ‘미쉐린 스타’에서 가져온 설정입니다. 미쉐린 스타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에서 발간하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맛집을 평가하는 체계예요. 현실에서는 별 3개가 최고 등급이지만, 영화에서는 별 5개라는 점만 다르죠. 공통점은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별점의 파급력이 크다는 건데요.
미쉐린 스타를 받으면 해당 레스토랑뿐 아니라 주변 상권까지 유명해집니다. 미쉐린 스타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된 이유이기도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프랑스 셰프 조엘 로부숑의 연구인데요. 로부숑에 따르면 미쉐린 스타 하나를 받으면 식당의 매출이 20% 오릅니다. 두 개는 40%, 세 개는 100%로 별이 많을수록 매출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해요.
영화 속 구스토의 모습을 통해 미쉐린 스타가 셰프에게 얼마나 큰 압박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미쉐린 스타는 셰프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도 안겨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쉐린 식당으로 이름이 알려진 뒤엔 손님들의 기대치가 높아져서 사소한 실수도 용납받기 어려워집니다. 더 나아가 별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맛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인증을 받은 것처럼 해석되어 매출이 급락할 수도 있죠.
실제로 미쉐린 스타를 잃은 후, 매출이 76% 떨어진 곳이 있어요. 아일랜드 최초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의 오너 겸 셰프인 케빈 손톤이 운영하는 식당이죠. 미쉐린 스타를 잃은 2015년 이후 경영난을 겪던 그의 식당은 끝내 폐업을 했는데요.
이 밖에도 자신의 식당이 미쉐린 평가에서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례도 있습니다. 미쉐린 스타를 거부하는 셰프가 등장한 이유이기도 한데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 셰프 세바스티앙 브라예요. 그는 자기 레스토랑 르쉬케가 19년간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고 있었는데도, 2017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평가의 세계에서 벗어나 요리하고 싶다”는 이유였죠.
<라따뚜이>는 세상으로부터 받는 평가의 이면성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고 찬사를 받는 건 축복이지만, 호평에 집착하다 보면 중심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죠.
국내에서도 서울과 부산의 여러 레스토랑이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며 세계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요. 모쪼록 셰프들이 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개성을 잘 살려 마음껏 요리할 수 있기를 바라보겠습니다.
글 박창영
매일경제 기자. 문화부를 비롯해 컨슈머마켓부, 사회부, 산업부, 증권부 등을 거쳤다. 주말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 리뷰를 연재한다. 저서로는 ‘씨네프레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