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배(inbae) 수석심사역의 해외투자 이야기-KV해외투자 사례들(2)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이인배입니다. 투자팀에서 수석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고 명목상 '해외 담당'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습니다. KV 해외투자 이야기 시리즈를 통해 카카오벤처스가 해외투자를 바라보는 관점 및 제가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지난편에 이어 이번에는 카카오벤처스의 해외 투자 사례-모조비전, 스페이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2년 11월 기준, 카카오벤처스의 순정 외국패밀리는 모조비전(Mojo Vision), 미네르바 프로젝트(Minerva Project), 퓨전(Fyusion), 도조 매드니스(Dojo Madness), 리스트림(Restream) 등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생각보다 많네요. 곧 Web3 관련 스타트업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이 외국인'이거나 '한국과 미국의 경계가 불분명'한 회사도 여럿 있습니다. 스페이셜(Spatial), 레이즈 이노베이션(Lase Innovation), 블루스페이스(BlueSpace), 인텔론 옵틱스(Intelon Optics)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늘은 이중에서 2개의 회사만 언급드려 봅니다. 두 곳 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 세상이 어떨지를 '보여주는' 기술 해법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패밀리사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간은 시각에 제일 크게 의존합니다. 80%라는 수치를 본 적이 어디에선가 있지만, 수치를 떠나 시각이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정보를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이자 채널인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물론 특정 상황에서는 -예를 들어 영화를 보거나 또는 자연 속에서는-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전적으로 음향을 통해 느끼기도 하고 또는 시각 기능이 저하하는 대신 청각이 상대적으로 발달해서 생활에 적응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한 시력을 유지해 주는 마법 같은 제품 또는 기술을 통해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세상과 사물과 상황을 인지하고 다루고 대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효용일 겁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쯤, 카카오벤처스는 실리콘밸리의 하드웨어 패밀리사인 스트라티오(Stratio) 이재형 대표님을 통해서 어느 백인 기술자를 소개 받았습니다. Mike Wiemer라는 어느 다른 중견 스타트업의 CTO였습니다. 아주 신기한 기술 기반의 회사가 하나 있다는 제보를 듣고 만난 그는 Tectus Corporation 이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한 지 몇 년 된 상태였습니다.
엄청난 반도체 기술 기반 스타트업 Tectus는 브랜드 Mojo Vision으로 더 잘 알려진 회사입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표 이사인 Drew Perkins 는 이름난 연쇄 발명가이자 연쇄창업가며, 실은 본인의 시력 때문에 고생을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회사를 또 한 번 창업한 케이스였습니다. Tectus/Mojo는 시각의 부분적 장애(Vision impairment)를 안고 있는 사용자들에게 스마트 콘택트 렌즈를 공급하는 목표로 2015년 출범했습니다.
이런 회사를 사업 초기 단계에서 만나고 투자 기회를 가늠해 볼 운이 따랐던 건, 카카오벤처스의 해외 패밀리 네트워크 덕입니다. 김기준 파트너는 평소에 이재형 스트라티오 대표에게 “진짜 멋있는 선행기술을 가진 회사가 있으면 꼭 소개해 주세요”라고 당부했고, 이를 새겨들었던 이 대표님이 Mike를 소개해 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저희와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으니 당연히 추천해주셨겠지요.
카카오벤처스는 이런 식으로 패밀리 대표님으로부터 들어오는 쌍방간 endorsement를 매우 좋아합니다. 투자자로서는 이미 투자를 드린 기업의 핵심 멤버가 저희를 계속 좋게 봐주셨고, 현업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인성 + 실력 + 사업의 경쟁력] 면에서 한 번 걸러 주셨다고 생각하는 최고의 deal flow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결정했을 때는 제가 없었지만,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화상회의로만 Mojo 팀을 만나온 끝에 피칭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칭 마지막에 당시의 프로토타입을 노트북 화상 카메라 앞으로 가져왔는데, 광활한 우주의 암흑 속 한 점 불빛 같은 초록색 한 점이 보였습니다. 이 점이 점점 커지면서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모두에게 전율이 흘렀다고 하네요.
카카오벤처스가 종종 세상에 이야기하는 메시징 중에서는 '종과 횡'이 있습니다. 새로운 파장의 근원이 될 '종'을 담당하는 혁신 아이템들이 가끔 있고 이를 근간으로 옆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갈 '횡'이 되는 그럼 움직임, 결국 세상을 바꿔 나가는 모습이라는 비유법입니다.
스마트폰 생태계가 급속 성장을 했고 수많은 비즈니스와 문화가 모바일 세상을 플랫폼 삼아 싹 틔운 것을 예로 들면, 스마트폰의 발명과 상용화가 '종'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전후로는 반도체, AI 기술, 차세대컴퓨팅 등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혁신이면서 새로운 파생산업과 일자리의 변화를 세상에 가져오는 그런 축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이런 주축, 변화의 선봉장이 될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베팅해 보는 게 선행기술에 대한 투자가 되겠습니다.
어쨌든 카카오벤처스 입장에서는 당시에 이미 AR/VR 등의 키워드에 관심을 가진 지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모조비전을 접했고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이루고자 하는 바가 다른 유사한 비즈니스 대비 엄청나게 격차가 크다고 봤었습니다. 저렇게 미세한 소자들을 집적해서 엄청나게 작은 디스플레이를 생각하고 이를 컴퓨터나 다름없는 완전한 하드웨어 시스템에 포함해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점, 그리고 몇 년간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또한 이런 첨단을 걷는 회사에 투자하기 좋아하는 이름난 벤처캐피탈, NEA (New Enterprise Associates)로부터 첫 투자를 이미 받았다는 점. 이런 다양한 긍정적 요소들이 “그래 우리도 한번 합승해 보자”는 의사결정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시장 수요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세상 + 정보'를 시야 안에 바로 끼워 넣어 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을 때 효용을 최대로 느낄 잠재 고객군을 열심히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전술부대, 소방대원, 프로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시나리오를 발굴하려 노력했고, 2022년에는 아마존 알렉사 팀과 협력해서 스마트 스피커와 쇼핑리스트 기능을 비주얼 UI화 하는 POC (Proof-of-Concept) 프로젝트의 홍보 영상도 공개했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 받는 모조비전, 첫 제품의 정식 출항이 기대됩니다.
다음은 한국에서 (아마도 모조비전 보다 더 많이) 알려진 기업, 스페이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조비전을 단편적으로 설명하자면 '스마트 AR 렌즈 회사'가 되는 것 처럼 스페이셜은 'VR 에서 시작한 AR 협업 플랫폼' 회사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3D 가상 세계의 개념은 있어 왔고, 상상의 세계에서 뛰어놀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준 RPG류의 게임처럼 이미 선례가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연장선상에서 마치 어느 순간 새로이 등장한 컨셉인 것 같은 포장법이라고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페이셜을 제일 쉽게 표현하는 방법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오래전부터 구현하고 있던 미국기업'일 지도 모르겠네요.
스페이셜은 2016년 2명의 반짝반짝한 공동창업자들의 손에 의해 탄생한 회사입니다. 연쇄창업가이자 구글에 회사도 팔아 본 대표 Anand, 그리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 전문가이자 다양한 제품의 인터랙션디자인을 해 본 '연쇄 창조가'라고 할 수 있는 CPO 이진하 이사가 합심하여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이진하 이사의 지난 프로젝트들을 개인 홈페이지에 가서 구경해 보시면, 눈에 띄는 많은 서비스와 제품의 형태 또는 면모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할 때 이진하 이사를 회사 건물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무선사업부의 임원 한 분이 다른 사업부의 특이하거나 똑똑한 인재들을 모아서 점심식사 미팅을 한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초대되었던 인원 중 이진하 이사는 삼성에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최연소 부서장'으로 이미 사내에서 유명했습니다. (훈련소를 다녀와야 하는 점 때문에) 짧은 빡빡머리로 나타난 이진하 이사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부터 강렬한 첫인상을 줬고, 덕분에 loose connection으로 친분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진하 이사가 퇴사 후 미국으로 복귀해 친구와 공동창업을 거의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습니다. 그때 저는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가서 엄청난 일을 저질러보라는 식의 조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카카오벤처스가 스페이셜에 투자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죠. (제가 본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몸담고 있었을 때 투자가 진행되었습니다.)
스페이셜은 B2B 시나리오에 집중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B2C 사용자들이 늘어나려면 AR/VR 헤드셋이 많이 보급되어야 하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이셜은 원격으로 협업해야 하는 엔터프라이즈/대기업 종사자들이 좀 더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3D 공간 또는 작업대에서 같이 만들어 나가고 뜯어 보고 그려 내는 시작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최근에는 크립토/NFT 시대에 맞춰 3D 온라인공간에서의 소셜활동을 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점에 착안해 열정적인 잠재 사용자층을 Web3 크리에이터로 규정하고, 이들을 위한 기능들을 신규 출시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헤드셋이라는 비싼 진입장벽을 넘지 못하는 유저들에게도 쉽게 스페이셜 플랫폼의 경험을 선사하여 주기 위해 모바일 버전과 웹 버전을 강화하는 등 열정 유저들이 원하는 가상의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꼭 spatial.io에 방문하셔서 가입해 보세요. Fortnite 이랑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좀 더 순수하고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공간처럼 진화한 스페이셜 플랫폼을 쉽게 써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이디어 구상를 구상하고 협업해 왔습니다. 실제 결과물을 상세히 설계해 왔으며 이를 위해 해당 시점에 가장 쓰기 좋은 툴을 써 왔습니다. 디지털 세계에 들어 컴퓨터가 생산성 툴의 최고봉이 되어 수많은 전문가와 크리에이터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컴퓨팅 다음으로 모바일 컴퓨팅 시대가 도래하면서 양상이 달라졌죠. 모바일기기에서는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데이터의 수집과 전달, 표현이 가능해졌고 앱 비즈니스와 생태계를 창출했습니다. 나아가 다양한 소셜서비스와 플랫폼들이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었음은 물론, 디지털카메라 등 수많은 기성 하드웨어 비즈니스까지 위협 또는 멸종시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의 한계 (예를 들면 Form Factor, 즉 화면의 크기 또는 배터리 용량 등) 때문에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 하지만 보완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뭘까요. 발명가와 혁신가들은 이러한 질문을 출발점 삼아 컴퓨터를 직접 다루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도 컴퓨팅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팅해 볼만한 미래 솔루션들이라고 생각한 모조비전과 스페이셜, 이 둘은 다르지만 닮은 점이 많습니다. 체험형 컴퓨팅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아무튼 우리가 수십 년간 써 오던 퍼스널 컴퓨터와, 십대에 접어든 스마트폰을 쓰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 기업들입니다.
국경을 넘어,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고 써 보게 될, 상상력에서 기반한 솔루션들은 많았고 흥망성쇠를 이미 보여 준 회사들은 지난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카카오벤처스 입장에서도 너무나 멋있었지만 투자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많네요. 다행히도 모조비전과 스페이셜은 저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상호 간의 운이 따랐던 회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가 쓰게 될 제품과 서비스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 멋진 초기 비전을 보여준, 그리고 쓰는 이에게 미래를 보여줄 이런 창업팀들을 저희는 좋아해 왔고 앞으로도 좋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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