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기펜재일까?" 성공하는 가격 정책의 조건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인턴 김송현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요즘 들어 가격 정책, 특히 가격 인상에 관한 논의가 전보다 활발해졌다고 느낍니다. 아마도 쿠팡이 와우 멤버십 가격을 크게 인상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일각에선 쿠팡의 가격 정책이 성공할지, 경쟁사에 미칠 영향은 어떨지 분석합니다. 또 스타트업 중에선 쿠팡 등 다른 기업의 가격 인상 사례를 레퍼런스 삼아 가격 인상을 고려하는 곳도 있는데요. 그러나 기업마다 규모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지 성공한 사례라 해서 참조하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쿠팡의 가격 인상 사례를 쿠팡이란 기업의 특성과 쿠팡이 속한 시장의 상황 등을 고려해 바라봄으로써 스타트업이 참고할 만한 성공적인 가격 인상의 조건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쿠팡의 가격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감히 추측컨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스타트업도 쿠팡처럼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까요?
아주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가격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소비자의 WTP(Willingness to pay), 가격 인상 시 소비자의 이탈률, 경쟁사의 가격 정책 등이 있을 텐데요. 이 모든 요소를 전부 세밀하게 고려해야만 가격 정책의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쿠팡도 물론 위 요소를 꼼꼼히 고려해 가격 정책을 수립했겠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요소에 관한 건 아닙니다. 가격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체효과와 소득효과, 그리고 쿠팡이 제공하는 재화의 특성인 ‘기펜재¹’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1) 기펜제(Giffen good)는 가격과 수요가 비례하는 열등재를 뜻합니다. 기펜재는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감소하는 독특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현실에서 기펜재의 실제 사례를 찾긴 어렵습니다. 조건이 무척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증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기펜재’ 역시 엄밀하게 따졌을 땐 쿠팡은 열등재가 아니기에 실제 기펜재의 정의에 들어맞진 않습니다. 따라서 열등재에 대한 가정은 제외하고 ‘가격이 오를 때 수요가 늘고, 가격이 낮아질 때 수요가 감소하는 특수한 재화’를 지칭하기 위해서 ‘기펜재’를 사용했다고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기업이 제품의 가격 인상을 꺼리는 이유는 수요의 법칙 탓입니다.
보통의 재화는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느는 식으로 가격과 수요가 서로 반대로 움직입니다. 수요의 법칙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재화의 가격 인상은 그것의 대체효과와 소득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보통은 두 효과가 모두 음(-)의 방향으로 작용하며 수요가 감소합니다.
쿠팡을 예로 들겠습니다. 대체효과는 두 재화 사이의 상대적인 가격 차이에 따른 수요 변화를 말합니다. 쿠팡 멤버십 가격이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오르면 경쟁사인 컬리 멤버십 가격(1900원)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졌다고 느껴집니다. 그 탓에 소비자는 쿠팡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컬리 수요를 늘리게 됩니다. 즉, 쿠팡 수요는 가격 인상으로 인해 감소하는 음(-)의 대체효과를 가집니다. 소득효과는 어떨까요? 소득효과는 실질소득의 변화에 따른 수요 변화를 뜻합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면 구매력이 떨어지듯이 쿠팡 멤버십의 가격 증가는 쿠팡 구독자의 구매력, 즉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쿠팡에서의 쇼핑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펜재는 가격과 수요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감소하는 식입니다. 이는 소득효과로 인한 수요 증가/감소폭이 대체효과로 인한 수요 감소/증가폭보다 훨씬 클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기펜재는 ▲대체효과가 무척 작거나 ▲소득효과가 무척 크면서 ▲대체효과와 소득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수성을 지닌 재화입니다. 기펜재는 수요의 법칙을 벗어나는 특이한 재화입니다.
기펜재와 마찬가지로 쿠팡도 특수성을 가집니다. 쿠팡의 특수성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수성은 각각 쿠팡 멤버십이 기펜재의 특수성을 가지게 만듭니다.
▽ 쿠팡 멤버십의 특수성
(1) 월 혹은 연 단위로 구매하는 수량이 정해진 구독서비스란 점 → 대체효과가 무척 작다
(2) 단일한 멤버십이 쇼핑(쿠팡)・유통(로켓배송)・OTT(쿠팡플레이)・배달(쿠팡잇츠) 등 다양한 시장에 동시에 속했음 → 소득효과가 무척 크다
(3) 높은 고객 만족도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 기업이란 점 → 대체효과와 소득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특수성들로 인해 쿠팡은 가격을 인상해도 수요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기펜재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쿠팡과 경쟁하는 재화들도 쿠팡의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늘지않고 오히려 감소할 수 있는 기펜재의 성격을 가집니다.
먼저 (1) 구매 수량이 정해진 구독서비스란 점은 쿠팡의 ▲대체효과를 작게 만듭니다.
쿠팡 멤버십의 구매 수량은 1달에 한번(월간 구독자) 혹은 1년에 한번(연간 구독자)입니다. 일반적으로 결제당 구매 수량이 적을수록 가격 변화에 따른 구매량의 변화가 적어집니다. 주식의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KOSPI 기업 182개를 분석한 결과, 주식분할로 총 주식 수가 늘어나고 투자자들이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주식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경우 분할 전보다 주가 변동성과 거래량 간 상관계수가 높아집니다. 반대로 자사주 소각이 일어나 총 주식 수가 줄어들고 투자자들이 같은 금액으로 더 적은 수의 주식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 소각 전보다 주가 변동성과 거래량 간 상관계수가 낮아집니다. 즉, 쿠팡 멤버십처럼 소비자가 1달 혹은 1년에 한번만 구매하는 재화는 가격 인상에 따른 대체효과(수요 감소)가 작습니다.
정부 예산이 각 부처별 예산의 합으로 이뤄지듯, 소비자도 자신의 총 소득에 맞춰 소비 카테고리별 예산을 정합니다. 소득효과는 각 카테고리마다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재화가 다양한 카테고리에 속한다면 각 카테고리마다 소득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득효과의 총합이 커지게 됩니다.
둘째로 (2) 단일한 멤버십이 쇼핑, OTT, 배달 등 다양한 시장(소비 카테고리)에 동시에 속한단 점은 쿠팡의 ▲소득효과를 크게 만듭니다. 이는 소비자가 소비 카테고리별로 따로 하위 예산을 책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쇼핑, OTT, 배달비에 매달 5만원의 예산 상한선을 두고 매달 쿠팡 멤버십에 4990원, OTT 구독에 1.5만원, 배달비에 3만원, 총 4만 9990원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쿠팡 멤버십이 7890원으로 오르면 자신의 예산을 초과하는 총 5만 2890원을 사용하게 되는데요.
예산을 초과하거나 늘릴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다른 카테고리(식비, 교통비 등) 예산을 줄여야 합니다. 따라서 예산을 지키려면 쿠팡-OTT-배달 중 최소 한 항목에 대해선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가격이 오른 쿠팡 멤버십을 해지할 수도 있으나 쿠팡은 OTT와 배달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선 차라리 OTT나 배달비 지출을 줄이고 남은 예산을 식비나 교통비에 사용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즉, 쿠팡 멤버십의 가격 인상을 통해 줄어든 소비자의 실질 소득이 오히려 쿠팡의 수요는 유지・증가시키고 경쟁사의 수요를 줄이는 셈입니다. 쿠팡 특유의 범용성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 높은 고객 만족도를 바탕으로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단 점은 쿠팡의 소득효과와 대체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즉, 가격이 오르는데 수요가 증가하는 양(+)의 소득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다시 소비자의 예산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각자의 소득에 따라 한정된 예산을 가집니다. 따라서 여러 서비스를 구독하다가도 한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 자신의 예산을 초과하면 어떤 서비스는 해지하고, 어떤 서비스는 계속 구독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때 선택을 받는 건 보통 고객 만족도가 높은 ‘1등’ 서비스인데요. 설령 가격이 오른 게 1등 서비스라고 해도 오른 가격이 지나치게 높지 않다면 1등 서비스만 구독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여기까지 쿠팡의 가격 인상의 성패를 쿠팡 멤버십이 지닌 특성과 대체효과, 소득효과를 통해 예상해봤습니다.
결론을 요약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뛰어난 범용성과 경쟁력을 갖춘 재화는 가격 인상이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줄 거란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결론을 다소 길고 어렵게 풀어낸 건 가격 정책을 수립하며 고민해야 할 요소인 ▲우리 재화의 특성 ▲소득효과와 대체효과의 크기 비교 ▲경쟁 시장의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단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늘 가격 정책을 고민하기에 앞서 위 과정과 같이 “우리 제품은 기펜재일까?” 또는 “경쟁사의 제품은 기펜재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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