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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벤처스 May 02. 2024

헬스케어 비즈니스의 3가지 특수성

헬스케어의 속성과 비즈니스적 특수성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김치원 부대표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면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헬스케어 전문가 혹은 비즈니스맨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헬스케어 비즈니스는 다른 비즈니스와 다르다


언뜻 생각해도 헬스케어는 뭔가 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무엇이, 왜 다른지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에서 헬스케어 사업을 시작해도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헬스케어 관련 경력직이 헬스케어의 특성을 감안한 헬스케어 사업 계획을 제시해도 경영진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논의 과정에서 경영진이 사고의 폭을 넓힌다면 다행이지만 경영진이 기업의 기존 방식을 그대로 헬스케어 사업에 갖다 붙이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듭니다. 


그런 비효율이 줄어들길 바라면서 의료의 3가지 속성(불확실성, 복잡성,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의료 산업이 다른 산업과 무엇이, 왜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의료의 불확실성: 대리인(의사)의 존재와 3자 지불 방식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에로우 교수는 Uncertainty and the welfare economics of medical care(1963)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의료 서비스의 특수한 경제적 문제는 질병의 발생 및 치료의 효과와 관련된 불확실성의 존재에서 기인한다. 
The special economic problems of medical care can be explained as adaptations to the existence of uncertainty in the incidence of disease and in the efficacy of treatment.


의료 서비스는 ‘필요성이 생겨나는 경우(=질병의 발생)’와 필요성으로 인해서 가하는 ‘처치의 효과(=치료 효과)’, 양쪽 모두에서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이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종종 애로우 교수의 통찰에 대해 “불확실성은 의료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합니다.일본의 한 학자가 “복지와 교육 역시 그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인 예인데요. 의료처럼 복지와 교육 모두 처치 효과가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필요성의 불확실성에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의료는 사람마다 질병이 발생할 확률과 발생 시기, 즉 필요성의 발생 여부가 매우 불확실합니다. 반면 복지는 복지대상자를 소득과 연령 등에 따라 비교적 쉽게 선정할 수 있습니다. 교육 역시 대다수 인구가 필요해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신용재, 탐색재, 경험재 분류 표 (Source=김치원)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의료는 서비스 공급자(의료인)와 수요자(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큽니다.

그 탓에 의료 서비스는 ‘신용재(Credence goods)로 분류됩니다. 신용재는 소비자가 재화를 사용한 뒤에도 해당 재화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워서 전문가(공급자 혹은 대리인)의 평가를 따르게 되는 재화를 지칭합니다. 신용재와 구별되는 재화로는 ‘경험재(Experience goods)‘탐색재(Search goods)가 있습니다. 경험재는 소비자가 경험해봐야 그 효용을 평가할 수 있는 재화를, 탐색재는 굳이 경험하지 않고 타인의 평가만 듣고도 그 효용을 평가할 수 있는 재화를 말합니다.




의료 서비스는 신용재이기 때문에 의료를 제공하는 공급자이자 대리인인 의료인의 신용이 무척 중요합니다. 국가가 면허제도를 통해 믿을 만한 능력을 갖춘 의료인을 선별하는 것도 환자들이 의료인의 신용, 즉 의료 서비스의 효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의사는 큰 권한과 권위를 받은 셈입니다. 


이런 불확실성 문제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활성화한다고 해도 해결되기 쉽지 않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브랜드라고 해도 신용재인 의료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선 브랜드의 신뢰도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이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의료에 대한 전문성을 쌓지 않는 이상 결국 브랜드의 신뢰도는 의료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서 의료의 불확실성과 관련해서 질병의 발생치료의 효과라는 두 측면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불확실성이 더 있습니다. 바로 ‘발생하는 질병의 영향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란 점입니다. 같은 병에 걸려도 사람마다 아픈 정도와 완치 가능성이 다릅니다. 이로 인해 의료비도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의료 보험이란 3자 지불 방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의료 산업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첫째는 신용재라는 특성으로 의사라는 대리인의 역할이 중요하단 점이고, 둘째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의료보험이라는 제3자 지불방식이 생겨났단 점입니다. 이 특성들은 헬스케어 B2C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환자는 의사라는 대리인의 개입이 필수적이고 의료보험이라는 3자가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구조 속에서 의료 서비스에 ▴큰 금액을 ▴직접 ▴반복적으로 지불할 유인이 없습니다.






의료의 복잡성: 진료 행위의 편차


의료의 불확실성은 복잡성으로 이어집니다.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은 보통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무한히 반복합니다. 하지만 의학은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연구자가 원하는 대로 실험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약 탓에 의학에는 아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복잡한 가설에 머물러 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의료를 복잡하게 느끼는 건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데다 환자마다, 치료 과정에서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료 행위의 편차가 커지는 문제를 낳습니다.


BMJ(영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 실린 자료입니다. 1차 진료 환경에서 의학 지식 데이터 베이스  항목별 근거의 과학적 엄밀성을 3단계로 나눠서 평가했습니다. A 등급이 가장 엄밀하게 입증된 것이며 B, C 등급으로 갈 수록 엄밀성이 떨어집니다. A 등급이 18%, B 등급 32%, C등급이 50%라고 합니다. 과학적 엄밀성이 낮은 경우가 전체의 절반 정도인 셈입니다. 이 논문에서 평가한 항목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전문가들의 의견 혹은 사례 연구에 바탕을 둔 셈입니다. Source: MH Ebell, R Sokol, A Lee, et al. How good is the evidence to support primary care practice?. BMJ 2017;22(3): 88-92)


진료의 편차가 큰 것은 의학이 불완전하기 때문도 있지만, 의학을 진료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도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진료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합니다. 의학 지식은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도출한 결과의 평균이기 때문에 개별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진료 체계, 의료 보험 등 의료 시스템도 진료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의사는 환자가 입원이 가능한지, 처방하려는 약의 보험 적용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진료 과정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의사 개개인의 성향과 능력 또한 중요합니다. 의학 지식이 발전해도 그 지식이 실제 진료에 사용되는지는 의사 개개인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심근경색 발생 후 베타차단제라는 약물을 사용하는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베타차단제는 심장 박동을 줄여주는 약입니다. 과거에는 심근경색 발생 후 베타차단제를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했습니다. 심장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1982년, 심근경색 발생 후 베타차단제를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률을 높인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후속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자 베타차단제 사용은 진료 가이드라인에 반영됐습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은 여전히 심근경색 환자에게 베타차단제를 매우 보수적으로 처방했습니다.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된 지 16년이 지난 1998년까지도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절반 정도만이 베타차단제를 처방받았을 정도였습니다.


베타차단제 사례보다 의학적 쓸모가 확실히 밝혀진 의료 행위도 의사들 간 ‘수용도’ 차이는 큽니다. 한 논문에서는 미국 내 5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의학적 근거가 잘 확립된 의료 행위에 대해 의사들 간 수용도 차이가 큼을 밝혔는데요. 예를 들어 동일한 지역 내에서 벌어진 6개 진료 상황에 대해 의사들은 위 그림고 같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A, D, F는 실행 비율이 높을수록 바람직한 사례이고 B,C,E는 비율이 낮을수록 바람직한 경우입니다. 그래프에 나오는 데이터 포인트(에러바) 하나하나는 개별 의사의 진료 행위 확률을 뜻합니다. 생각보다 의사 간 큰 차이가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Source: Z Song, S Kannan, RJ Gambrel, et al. Physician Practice Pattern Variations in Common Clinical Scenarios Within 5 US Metropolitan Areas. JAMA Health Forum 2022;3(1))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인식, 선호도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의료는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문화, 관습,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예컨대 앵글로색슨 백인은 통증에 좀 더 초연한 반면 이탈리아인과 유대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통증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산후 조리 문화 역시 서구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를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의료는 로컬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인허가 제도가 다르고 보험 수가 제도가 다른 정도를 넘어서서 지역마다, 과장하자면, 의사마다 별도의 시장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헬스케어 산업, 특히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에서 영업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의료의 생산형태: 다품종 소량생산


마지막으로 소개할 의료 산업의 중요한 특징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점입니다. 

일단 질병 자체도 다양한데, 환자의 특징이나 질병의 경과에 따라 필요한 처치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의료 제품은 다품종 소량생산되는 게 기본입니다. 의료기기 대기업인 Medtronic의 2021년 파이프라인 제품만 해도 아래와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선 각 제품 하나하나를 위한 연구, 개발, 인허가, 보험 적용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헬스케어 비즈니스는 무척 복잡하고 번거로운 비즈니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빅테크들이 헬스케어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생산형태의 디폴트가 소품종 대량생산입니다. 거기서 오는 업의 성격 차이 때문에 빅테크가 당장 헬스케어 사업에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들이 지닌 AI 역량도 헬스케어 산업에서 십분 발휘되긴 어렵습니다. 의료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개발하려면 특정한 건강 데이터를 수집해서 특정 용도에만 특화돼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가지고 국가별 인허가 및 보험 등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이를 빅테크가 잘해낼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방대한 헬스케어 데이터를 자사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가져와 다른 서비스 영역에 활용하는 게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헬스케어 업계에 계신 분들은 이미 잘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다른 업계에서 헬스케어 진입을 고려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헬스케어 업계 내에 있지만 대학병원 교수와 같이 특정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분들도 이런 종류의 큰 그림은 의외로 접할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 김치원(Ryan) 디지털헬스케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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