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앱의 딜레마: BM과 Z세대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창업자는 선호하지만 투자자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카테고리들이 있습니다. 개발과 초기 모객은 비교적 쉽지만 확장이나 차별화를 꾀하거나 해자를 쌓기는 어려운 카테고리들인데요. 데이팅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데이팅 카테고리 자체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기에 데이팅앱은 괜찮은 BM과 지표를 가져도 투자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은 듯합니다.
데이팅앱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음은 데이팅앱 시장의 선두를 다투는 두 기업의 시장 평가에서도 드러납니다. Match Group(Tinder), Bumble의 주가는 2021년 이후 쭉 큰 폭으로 하락 중입니다. 주가 하락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매출과 ROA 등 실적과 MAU 등 지표는 개선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데이팅앱 카테고리 자체가 저물고 있는 듯합니다.
데이팅앱의 매력이 떨어진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차별화의 부재 ▲불확실성 ▲불공정성입니다. 셋 모두 데이팅앱의 근본적 특성, 즉 BM과 주요 고객의 세대와 관련 있는데요.
자세한 설명에 앞서, ‘데이팅앱은 매력이 없다’라고 확언하는 건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 구체적으로 ‘(지금 같은, 데이팅만을 위한) 데이팅앱은 매력이 없다’라고 말할 순 있겠습니다. 다만, 후술할 세 가지 불안 요소를 극복해내거나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데이팅앱은 앞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입니다.
첫번째 불안요소는 차별화가 어렵단 점입니다. 차별화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데이팅앱 유저는 여러 유사 앱을 동시에 사용하다가 가장 괜찮은 앱에 정착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틴더, 범블 등을 전부 사용하다가 틴더에서 매칭이 잘 된다고 느껴지면 틴더 사용 비율을 높이는 식입니다.
따라서 유저 이탈률을 줄이기 위해선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매칭률을 높이거나, UX를 개선하는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두 방법 모두 단기적인 차별화를 만들 순 있지만 장기적인 해자가 되긴 어렵습니다.
우선 매칭률 개선은 BM과 관련 있습니다. 데이팅앱의 BM은 보통 구독제나 건당 결제로 이뤄집니다. 유사 BM을 사용하는 타 카테고리는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해소할수록 이탈률이 낮아지고 수익성이 좋아집니다. 데이팅앱 유저의 가장 큰 페인포인트는 데이트 상대방과의 매칭이 어렵단 점입니다. 하지만 데이팅앱은 매칭률을 개선할수록 이탈률이 높아지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데이트 상대방을 찾게 되면 더이상 데이팅앱을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일회성 만남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요? 매칭률과 이탈률 간 반비례 관계를 해결할 순 있겠지만, 앱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광고 수급이나 꾸준한 모객이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수익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UX 개선도 차별화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팅앱 시장에서 차별화를 낳는 요소는 대부분 모방하기 쉽습니다. 틴더의 고유 기능이던 ‘스와이프(Swipe)’는 이제 범블 등 웬만한 데이팅앱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팅앱을 여러 개 비교하다 보면 결국 기능적으로 다 비슷해 보이는데요. 이는 데이팅앱의 신기능은 특별한 기술이나 막대한 자본이 없이도 쉽게 모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꽤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데이팅앱의 경쟁자는 다른 데이팅앱만이 아닙니다. 인스타 등 소셜미디어가 데이팅앱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데요. 달리 말하면 인스타를 틴더보다 더 괜찮은 데이팅앱으로 여기는 유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세대의 특성과 관련 있습니다. 틴더, 범블, 아만다, 위피 등 주요 데이팅앱이 런칭한 지 벌써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데이팅앱의 주요 고객도 밀레니얼에서 Z세대로 바뀌고 있는데요. Z세대는 성향적으로 데이팅앱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매칭을 더 선호하는 듯합니다.
Z세대를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과 무력감입니다. 세대를 뭉뚱그려 정의하는 건 위험하지만, 경험과 도전보단 탐색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성이 Z세대 전반에 걸쳐 점점 짙어지는 듯합니다. 한 끼를 먹기 위해 수십 곳의 식당 사진을 훑고, 독특한 액티비티를 시도하기 전에 수 시간 동안 타인의 리뷰를 탐독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채로 경험하고, 확신을 가진 채 도전하려 합니다. 불안과 무력감을 피하기 위해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하길 원하는 셈입니다.
데이팅앱에선 베스트컷 몇 장과 간략한 프로필만으로 대화를 이어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반면 소셜미디어에선 상대방의 일상 사진을 피드에 올라온 만큼 확인하고, 팔로워가 누군지, 그들과 어떤 댓글을 주고받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트 상대를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끽해야 베스트컷 3~4장만 보고 매칭을 시도해야 하는 데이팅앱과, 상대방의 피드를 모두 훑고 매칭을 시도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중 ‘상대방이 누군지’에 관한 불확실성을 더 잘 해소해주는 건 소셜미디어입니다. 애초에 데이팅앱 속 상대방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사람인지 AI인지도 불확실합니다.
게다가 소셜미디어는 상대방의 ‘주변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팅앱의 진입장벽 중 하나는 상대방의 위험성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소셜미디어는 이를 상대방의 팔로워 숫자, 팔로워와 상호작용(댓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시킵니다. 데이팅앱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Z세대의 화두를 하나 꼽으라면 ‘공정 담론’을 꼽고 싶습니다. 공정 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회는 평등하게, 보상은 노력한 대로 주어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옳다는 생각인데요. Z세대의 한쪽에선 이를 능력주의로 귀결시키고, 다른 한쪽에선 선별주의로 귀결시킵니다. 하지만 드러난 방향성만 다를 뿐, 귀결의 출발점은 공정 담론입니다. (각자 상황에 맞춰)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만 한단 것입니다.
공정 담론에 따르면, 기존 데이팅앱은 무척 불공정합니다. 매칭을 위해선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비용을 지불해도 원하는 사람과 매칭될지 불확실합니다. 일단 매칭이 돼도 상대방과 원하는 만큼 대화를 하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데이팅앱이 설계해놓은 시스템 속에서 유저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애초에 BM에 의해 노력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기도 하고요.
소셜미디어 상에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내든 시간과 끈기만 있다면 (차단당하기 전까진) 얼마든지 구애의 DM을 보낼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다릅니다. 원하는 상대방을 직접 찾아 원하는 만큼 DM을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데이팅앱과 달리 소셜미디어 유저는 대부분 만남을 전제하지 않기에 매칭 성사율은 낮습니다. 하지만 DM을 보내는 유저도 이를 인지하고 있기에 공정성에 대한 체감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훨씬 좋습니다.
여기까지 데이팅앱의 불안요소 3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제 긍정적인 사고를 해볼까요? 불안 요소가 존재한단 건 곧 기회가 존재한단 말이기도 합니다. 불안 요소가 없는 시장은 소비자의 페인포인트가 없거나, 이미 고도화돼 진입 장벽이 높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불안 요소를 잘 극복해내는 데이팅앱은 큰 주목을 받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섣불리 답을 제시할 순 없지만 기대되는 모습은 있습니다.
첫번째 기대는 ‘결정사 2.0’입니다. 고도화된 결혼정보회사를 지칭해봤는데요. 데이팅 서비스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앞서 논의했던 ▲데이팅앱 ▲소셜미디어 그리고 ▲결정사입니다. 결정사는 이 중에서 가장 하이엔드, 고관여 서비스입니다.
결정사 모델은 데이팅앱의 불안 요소를 꽤 해소시켜 줍니다. 불확실성의 해소를 위해 필요한 건 결국 효과입니다. 정확히는 경험 대비 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격은 비싸지만 성사율이 높은 결정사 모델은 매칭과 성사 과정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해줍니다. 마찬가지로 노력(유저의 스펙과 지출 비용으로 정량화)에 어느 정도 비례하는 보상(매칭 경험의 질)이 주어지기에 공정성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체감됩니다.
어떻게 기존 결정사 모델에서 ‘2.0’이라고 부를 만한 도약을 만들어낼진 지켜봐야 합니다. 비싼 가격, 복잡한 절차 등 페인포인트를 해소해주는 방식, 유저의 오프라인 인맥들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방식 등이 있겠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2.0 수준의 새로운 접근법이 나온다면 데이팅 시장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아예 타겟을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앞서 Z세대의 특성에 따른 불안 요소를 언급했는데요. 세대적 특성을 극복하는 대신에 아예 다른 세대, 바로 시니어를 포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거의 모든 카테고리가 시니어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시니어 시장은 규모적으로나 단계적으로나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데이팅 만큼은 시니어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있습니다.
사실 국내에선 시니어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가 아직 온라인 데이팅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데이팅앱을 통한 일회성 만남 사례를 많이 접하다 보니 ‘데이팅앱=일회성 만남’이란 편견이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국민 정서상 데이팅앱 사용에 떳떳하기 어려우니 시장 규모도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반면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데이팅앱=일회성 만남’이란 인식은 만연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플의 과반수가 앱을 통해 맺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입니다. 데이팅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워지지 않는데도 결국 데이팅앱은 국내 연애・결혼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꽤 걸릴 수도, 계기가 되는 이벤트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요.
어쩌면 그 계기가 시니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시니어가 처한 상황과 세대적 특성에서 비롯된 추측입니다. 우선 Z세대보다 시니어가 데이팅앱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덜 할 수 있습니다. 데이팅앱을 통한 일회성 만남 사례와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접할 기회가 비교적 적기 때문입니다. 식자우환인 셈입니다.
시니어는 연인・배우자의 대체재가 부족하기도 합니다. 특히 은퇴자의 경우 만남에 대한 니즈가 더 크지 않을까 싶은데요. 2030은 연인 외에도 만남의 대상이 많을 확률이 높습니다. 친구, 직장 동료 등이 대표적인 대체재입니다. 상대적으로 대체재가 부족한 시니어는 연인의 부재에 따른 감정적 공허함이 더 큽니다.
마지막으로 시니어는 앱에 대한 로열티가 높습니다. 탐색에 대한 피로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불안 요소 1’을 설명하며 “데이팅앱 유저는 여러 앱을 동시에 사용하다 가장 괜찮은 앱에 정착한다”고 했는데요. 시니어는 그와 달리 하나의 앱에 대한 관성이 큽니다. 높은 구매력까지 고려한다면 앱 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해볼 여지도 있습니다. 성공한다면 데이팅앱의 고질적 문제인 BM과 세대적 특성을 단번에 해결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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