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위해 준비한 친절한 '초기 가격 책정' 전략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무언가를 구매하고 말고는 보통 가격에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이 가격을 두고 깊이 고민합니다. 데이팅 앱이든 SaaS든 모든 프로덕트는 각자의 생산비용과 고객층이 있습니다. 가격 정책의 기본은 들어간 비용보다 많은 매출을 가져오면서, 고객의 Willingness to pay(WTP)를 넘어서진 않을 가격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WTP를 대체 어떻게 파악하느냐입니다.
애초에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지표인 건 둘째치더라도 WTP는 경쟁사의 상황, 고객의 취향과 주머니 사정 등에 의해 계속 변화합니다. 제공하는 프로덕트의 가치가 변화함에 따라 WTP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고요. WTP의 큰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꽤 많은 스타트업이 가격을 지나치게 높거나 낮게 설정하곤 합니다.
사실 가격이 너무 높을 때 나타나는 문제는 해결하기 쉽습니다. (물론 언제, 얼마나 가격을 인하하느냐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웬만하면 그냥 가격을 낮추면 됩니다. 기존 고객은 이미 쓰던 제품이 저렴해지니 좋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니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도 수월해집니다.
문제는 가격을 인상하는 일입니다.
가격과 수요는 반비례한다는 명제처럼, 가격 인상은 고객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이 제품의 가격효과와 소득효과를 뒤틀 수 있다면 가격 인상이 수월하겠지만, 이는 대다수 스타트업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지” 그리고 “어떻게 가격을 매끄럽게 인상할지”는 모든 초기 스타트업의 최대 과제입니다. 이 글에서는 첫 가격을 설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올해도 수많은 프로덕트가 시장에 나왔습니다. 신규 B2C 앱을 보면 열에 아홉은 Free미엄(Free+Premium) 전략을 사용합니다. 고객에게 일단 무료로 푼 뒤에 추가 기능은 유료화하는 식입니다. 혹은 처음엔 무료로 풀고 PMF를 찾았다 싶으면 유료화하는 방식도 많이 보입니다.
Free미엄은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고 그에 따른 광고 수익을 늘리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확장성과 브랜딩을 고려하면 Free미엄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많습니다. Free미엄 혹은 무료 배포를 통해 부풀려진 트래픽을 포기하지 못해 적절한 유료화/가격 인상 타이밍을 놓치는 팀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Free’는 Free미엄 전략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판매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걸 넘어 제품의 가치를 가시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판매자가 생각하는 제품의 명목적 가치입니다. 모든 고객은 경험을 통해서 “비싼 건 좋고, 싼 건 아쉽다”라는 명제를 체득합니다. 즉, 무료 제품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기대감이 낮단 건 모객을 위해 아주 낮은 허들만 넘겨도 된단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주 낮은 기대만 하는, LTV가 작은 고객만 많을 수 있단 거죠.
가격은 하나의 기준점이 되기도 합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 간 비교에 쓰이기도 하고,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가격이 0원이라면 그 기준이 없는 셈입니다. 따라서 향후 제품을 유료화하거나 가격을 인상할 때 고객 반발과 혼란이 무척 커질 수 있습니다.
이는 콘텐츠 스타트업이 가격 전략을 특히 어려워하는 이유입니다.
콘텐츠는 고객의 니즈는 건드려도, 페인포인트를 건드리기 힘듭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란 건데, 개인적으로 이는 콘텐츠의 가격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콘텐츠는 다른 제품군에 비해 분량이나 형태가 비슷해도 제품마다 생산비용과 품질의 편차가 큽니다. 반면, 가격은 형태에 따라 고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는 1.5만 원, 3000자짜리 칼럼은 월 0.5~1만 원, 뉴스레터는 무료가 보통인 것처럼요.
----------
그렇기에 일종의 테스트와 이터레이션을 통해 우리 제품이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와 가격에 따른 소비자 반응을 파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PMF를 찾기 위해선 수많은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가격은 ‘얼추 시장 평균가에 맞추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가격 책정이야말로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가격은 가장 정량화하기 쉬우면서도 제품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적인 테스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은 제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하는 일입니다. CRM용 SaaS를 제공한다면, 해당 소프트웨어 개발비용과 그것이 사용 기업의 비용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우선 우리 소프트웨어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줄여줄지 예상합니다. 기존에 CRM을 담당하는 직원의 수를 줄여줄지, 혹은 기존 직원의 CRM 업무량을 줄이고 다른 업무를 맡길지 파악합니다.
2. 전자일 경우에는 소프트웨어가 사용 기업이 감원할 직원의 총인건비만큼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감원 대상자의 총 인건비가 1억 2천만 원이면 월평균 1000만원까지 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셈입니다.
3. 후자일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한데, 소프트웨어가 없었을 경우에 추가로 지출해야 할 예상 인건비나 소프트웨어 도입으로 증가할 수익을 통해 가격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CRM 인건비가 월평균 1000만 원이라면 우리 제품의 월 구독료는 최대 1000만 원입니다.
이때 주의할 건 평균의 함정입니다.
평균 인건비가 1000만 원이라 해도 모든 기업, 특히 스타트업이 그만큼의 비용을 지출하진 못합니다. 월 수억~수십억 원을 지출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에 의해 평균 지출 비용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국가나 산업의 문화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IT 업계 등 SaaS 구매에 이미 익숙한 일부 국가나 산업을 제외하면 아직 SaaS에 돈을 내길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위 방식대로 가격을 책정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생각보다 가격을 많이 할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격을 책정하기 전엔 항상 타겟이 누구인지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기업에게 1000만 원짜리 가치를 전달하는 제품을 만들어놓고 이를 일반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1000만 원짜리 제품은 1000만 원 이상을 지불할 수 있는 고객에게 판매해야 합니다. 무작정 볼륨을 키우기 위해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제품의 적정 가격을 가늠해 보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다 보면 우리 제품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초기 가격을 무조건 낮게 책정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제품이 고객에게 충분히 높은 가치를 제공한다면, 가격도 높게 책정하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일단 유저를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싸게 팔다가 뒤늦게 가격을 올리는 것보단, 최대한 제값을 받아내다가 차츰 가격을 낮춰서 볼륨을 키우는 게 (대다수 상황에선) 훨씬 쉽고 효율적입니다.
지금까지 초기 가격을 설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낮은 가격에 제품을 출시한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품의 가치에 걸맞게, 가격을 어느 정도 올려야 할 텐데요. 상술했듯 가격을 높이는 작업은 무척 어렵습니다. 무턱대고 올리기보단 타이밍을 잘 살핀 뒤 적절한 전략을 사용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가격을 잘, 또 자연스럽게 인상할지 ‘가격 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가 더 궁금하다면
#카카오벤처스 #스타트업 #초기투자사 #벤처캐피털 #Kakaoventures #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