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디지털로 건강을 관리하는 시대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부대표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면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가 내세우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과거에는 병원 안에서만 가능하던 것을 집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하겠다’입니다. 원격 진료, 디지털 치료제 모두 이런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진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혈액이나 소변 혹은 침을 통해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합니다. 디지털로 수집한 정보를 통해서 진단적 가치를 제공하고자 하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회사들 역시 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어떤 신호를 수집해서 진단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데, 이런 진단 도구를 at home digital diagnostics(가정용 디지털 진단)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헬스케어 도구를 개발할 때는 용도 설정이 중요합니다. 진단 도구의 용도는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많은 헬스케어 제품 및 서비스가 그렇듯이 진단 도구 역시 대부분 병원 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의 용도 가운데 집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진단 전 단계의 발병 위험 예측 및 프리-스크리닝과 치료 후 모니터링(반응/진행 평가)이 주로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단계의 진단은 대부분 CT, MRI와 같은 전문 의료 장비나 의사의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은 집으로 옮겨가기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at home digital diagnostics를 개발할 때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은 의료 보험입니다. 의료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이 단계에서 이 제품을 사용했을 때, 그 결과로써 환자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진단 단계 가운데 스크리닝(=건강 검진)은 가치 입증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상을 발견했다고 해도 확진 과정에서 별 이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양성 예측도가 낮다)
이에 비해서 모니터링은 상대적으로 가치 입증이 용이합니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서 치료 방법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환자 건강이 향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가치 입증과 관련해서는 프리-스크리닝 보다 모니터링이 더 유리합니다.
제품 자체의 가치 입증도 중요하지만, 의료진이 개입할 가능성 또한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프리-스크리닝의 경우 병원 방문 전에 이루어지는 반면, 모니터링은 병원에서 진단, 치료 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사용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의료진의 개입과 함께 사용되는 것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용도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어느 용도인지에 따라서 요구되는 정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프리-스크리닝과 모니터링을 비교해 보면, 프리-스크리닝은 수많은 질병들 가운데 특정 질병을 골라내는 개념입니다. 이에 비해 모니터링은 이미 어떤 질병인지 아는 상태에서 질병이 변화하는 정도를 찾아내는 개념입니다.
기술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자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통해서 우울증이나 치매를 선별한다고 했을 때, 비슷하거나 함께 발병할 수 있는 다른 질병(예: 우울증과 불안 장애, 치매와 파킨슨병)과 구분할 수 있을지가 이슈가 됩니다. 이에 비해 모니터링은 우울증 혹은 치매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변화만 보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측정이 능동적인 측정보다 보급에 유리합니다. 측정이 필요할 때마다 스마트폰에서 별도의 앱을 실행하는 경우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측정할 수 있다면 훨씬 편의성이 높아서 소비자가 사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소리를 바이오마커로 이용한다면, 앱을 켜고 앱에 나오는 특정 문장을 소리 내는 것보다 사용자가 통화 과정에서 말하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 프라이버시 이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마커와 질병의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 또한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보수적인 의사들의 수용성입니다. 당연하지만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이 클수록 의료계에서 수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는 앞서 다룬 ‘기술 정확도’와 관련됩니다. 질병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이 클수록 다른 질병과 구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측정해서 우울증 가능성을 프리-스크리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 우울증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증상(예: 활동 감소, 불면 증가)을 측정하는 개념으로, 우울증 자체의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이 경우 증상이 비슷한 다른 질병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소리를 통한 수면 무호흡 추정 혹은 소변 소리를 통한 전립선 비대증 추정의 경우, 질병 자체와 연관된 것을 측정하기 때문에 이런 이슈가 적습니다.
새로운 가정용 디지털 진단 도구를 개발할 때는 위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의료에서의 가치 입증, 기술의 정확도, 그리고 질병 병태 생리와의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스타트업이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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