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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벤처스 Aug 19. 2024

‘신의 손’ 꿈꾸는 로봇 수술

초정밀 수술의 새로운 시대, 로봇이 이끄는 의료 혁명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정주연 선임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면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의료의 꽃, 수술


세상을 살다 보면 절대 겪고 싶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수술입니다.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누군가에게 내 삶과 죽음을 맡기는 몇 시간. 수술은 병원에서도 모든 지식과 경험, 기술을 한 데 모아 실현하는 최고난도의 의료행위입니다. 당연히 집도의 한 명, 수술실 간호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듭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 때문일까요. 현대의 수술 과정을 지켜보면 낙후된 점도 있고, 그럼에도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스승님과 소속 기관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술식 기반의 수술 교육, 최적화된 마취 심도 조절,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수술 결과 등이 그 예입니다. 의술의 정수이자 꽃인 수술, 과연 지금 시대에 맞게 발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보수적인 의료에서도 가장 예민한 순간인 수술의 영역에서 혁신이라고 부를만한 큰 도약이 가능하긴 한 걸까요.


산부인과 전문의로 잠시 서전의 길을 지켜봤던 저에게 수술은 영원히 아름다운 난제의 영역입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도 많고 또 헤쳐나가야 할 일도 많으니까요. 감사하게도 카카오벤처스 디지털 헬스케어팀에서 다양한 헬스케어, 의료기기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하면서 수술의 ‘내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로보틱스를 통해 수술을 혁신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로봇이 수술하는 시대


‘로봇 수술’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회사는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의 다 빈치(Da Vinci)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PUMA560이라는 최초의 의료용 로봇이 있었고, 상용화를 앞서 시도한 로보닥이라는 회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 빈치는 1999년 최초로 출시된 이후 4세대 Xi와 SP까지, 개발을 거듭하며 로봇수술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Da Vinci S. 집도의는 왼쪽 콘솔에 앉아서 컨트롤러를 조정하면 카메라와 로봇 팔이 달린 카트가 움직이게 됩니다.


다만 다빈치는 연조직/내골격 수술에 쓰입니다. 즉, ‘몸 안에 카메라와 수술 장비를 넣는 수술’을 도와주는 로봇이지요. 혹시라도 가족 어르신 중에 고관절이나 무릎이 불편하셔서 수술을 추천받은 적이 있으시다면, 이때 추천받은 로봇 수술은 조금 다릅니다. 이때의 로봇 수술은 경조직/외골격 수술 로봇회사로 주로 관절을 수술하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쓰입니다. 


경조직 수술 로봇의 핵심 기능은 영상정보와 수술 중 병변의 정합입니다. 로봇에 장착된 수술 도구를 잡고 집도의가 환부를 잘라내면, 모니터 속 3차원 모델에 수술 도구와 환부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원래 의도했던 각도로 잘 잘리고 있는지 피드백을 줍니다. (수술로봇의 현재와 미래) 대표적인 예로는 Stryker의 Mako, Zimmer Biomet의 ROSA가 있습니다.



어쨌든 로봇 수술이라고 하면 ‘로봇 팔이 뚝딱뚝딱 병변을 자르고 꿰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실 텐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로봇 팔이 움직이는 건 맞지만, 결국 이를 사람이 게임 컨트롤러처럼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로봇 수술이 '수술의 미래'라고 말하는 걸까요?




수술은 손맛이 아니에요


음식은 손맛이지만 수술은 아닙니다


첫 번째, 로봇 팔은 손보다 정확한 움직임을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손은 수술하는 의사들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정상 조직과 암 조직의 차이, 상처를 봉합할 때 지그시 눌러주는 감각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쌓은 기술이지요. 이렇게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각과 긴장력의 감각을 햅틱(haptic)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로봇 수술이 햅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은 지속적인 한계로 꼽혀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촉각 피드백 없이도 로봇 팔이 사람보다 더욱 섬세하게 움직인다는 점이 새로운 놈(NORM)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로봇 움직임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컨트롤러 필터링입니다. 


사람의 손은 진동 6~14Hz, 진폭 100um의 정상적인 생리학적 미세 떨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떨림이 복강경이나 인터벤션용 와이어를 따라 끝까지 전달되면 떨림이 확대됩니다. 하지만 컨솔로 로봇 팔을 조정할 경우,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자체적으로 손 떨림 주파수를 필터링하고, 덕분에 부드럽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제공합니다. 반대로 의도치 않은 움직임은 비정상적으로 강하고 빠르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고주파수 진동 동작을 분리하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봇 관절은 사람과 다르게 360도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선생님, 어깨에 곰 한 마리 있어요


두 번째, 집도의의 신체적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Ergonomics, '인간 공학'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일하는 과정에서의 신체적 부담을 연구합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수술 필드에 들어서는 순간 상당한 신체적 부담을 지게 됩니다. 멸균소독된 공간에서 더러운 것과 닳지 않도록 작게 작게 움직이고,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 상태에서 두세 시간 이상 수술을 하게 되지요. 이에 반해 로봇 수술은 멸균비닐을 둘둘 둘러싼 로봇 팔만 수술 필드에 들어가고 집도의는 무균 필드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집도의의 신체적 부담이 왜 문제가 될까요? 바로 노동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수술이나 시술을 하는 의사들의 35%에서 60%는 목, 허리, 어깨 등의 통증을 겪고 있습니다. 때문에 12%는 진료를 줄이거나 조기 퇴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최근의 의료 인력 부족을 생각하면, 의료인의 노동 생산성, 조기 퇴직과 신규 인력의 감소는 장기적으로도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안 아픈 곳이 없는 병원 사람들…


물론 로봇 수술은 상체의 피로를 가중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드 바깥에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 잠깐이나마 일어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은 강점으로 꼽힙니다.




AR과 AI의 조합으로 더욱 강력해지다


세 번째, 다양한 의료 영상 및 인공지능과 연동하여 실시간으로 수술을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의 로봇 수술들은 컨솔 화면에 AR 형태로 최적의 수술 설계, 수술 중 가이드 (intraoperative guidance and navigation)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술 시 손상을 피해야 하는 중요 구조물을 찾아내고, 가장 최적의 접근 방향과 실제 진행율, 예상 실혈량을 영상을 기반으로 제공합니다. 최근 영상 분야에서도 AI가 발전하는 만큼, 영상 AI가 실제 수술 과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Intraoperative AR Assistance for Robot-Assisted Minimally Invasive Surgery


장기적으로는 로봇 수술을 통해 집도의가 같은 수술실이 아닌 원거리에서 원격으로 수술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예측도 있습니다. 로봇 수술 플랫폼이 설치된 공간이라면, 환자는 자신과 가까운 센터로 가고, 로봇 수술에 능한 집도의는 본인이 속한 병원에서 조종만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통신 속도 등의 기술적 이슈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모든 로봇 수술은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필드에 항상 사람이 스탠바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원격 수술 플랫폼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기술보다 규제와 인식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의 손을 만드는 카벤 패밀리, 코넥티브

코넥티브는 뼈를 깎는 정형외과 영역의 수술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입니다. 닳은 무릎뼈를 잘라내고 인공관절을 끼우는 수술 로봇을 만들고 있지요. 


사실 인공 관절 수술에 로봇이 도입된 지는 2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공관절 로봇 수술이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밀의료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뼈를 어느 각도로, 얼마나 깎을지 잘라내는 과정을 경험에 의존하고 있고, 실제 병변과 3D 모델의 연동을 위해 또 다른 못을 뼈에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직 절차상으로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가깝다고 코넥티브의 노두현 대표님은 말합니다.


코넥티브가 만들고 있는 의료인공지능 KOA는 관절염의 정도를 명확하게 진단하고, ALI는 인공지능으로 수술을 설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코넥티브의 궁극적인 목표는 외래에서 세운 수술 계획이 자연스럽게 수술실까지 이어지는 수술 로봇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홍보 맞습니다. 진료에 인공지능을 활용해보고 싶은 정형외과 선생님이라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로봇 수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로봇 수술은 아직 나아가야 할 일이 많습니다. 어떤 방향에 인시전(incision)을 넣고 접근할지와 같은 수술 플래닝은 물론, 시야에 들어오는 구조물이 무엇인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과정도 아직까지는 원하는 만큼 구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평온해 보이는 저 조직 아래에 혈관이 꿈틀대고 있을 수 있어요!)


또한 첨단 기술이 모이는 만큼 막대한 연구 및 개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결국 누가 이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당연히 프라이싱도 높게 책정될 것이고요. 천정부지로 솟는 의료비 지출이 모든 국가의 과제인 만큼, 어떤 가치를 전달함으로써 지불 의향을 이끌어낼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희망회로를 돌려보자면, 수술은 단시간 내 드라마틱하게 아웃풋을 보여주는 강력한 의료행위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중재를 가한 시점과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시점이 짧기 때문에 가치와 유용성을 입증하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치료 효과를 극적으로 개선할 좋은 기술과 제품이라면, 저는 도전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에 영원한 난공불락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Great incision, great surgeon”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크게 열고, 큰 수술을 하는 서전을 칭송하는 뜻이었지요. 수술 부위를 크게 열면 시야가 잘 확보되니 집도의에게는 좋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많이 아프고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최소침습, Minimal invasive surgery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수술에 대한 오랜 패러다임 중 하나가 바뀐 것입니다.


의료는 보수적이고 변화에 더딥니다. 하지만 저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변화를 감내할’ 전문가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탄탄한 효능의 입증과 치밀한 설계, 그리고 안전성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입니다.


저는 이렇게 긍지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의료의 최전선이 좀 더 효율적이고, 근무하기 편하고, 감과 느낌이 아닌 과학과 정량화의 영역으로 이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수술 결정과 설계, 수술 중 가이드, 만약 의료현장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저희 카카오벤처스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그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정주연 선임 심사역은 기술의 혁신과 효과적인 접근을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고, 일상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무석사,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수련 후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하였으며 의료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카오벤처스의 디지털헬스케어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의료를 바꾼다는 마음으로 창업가와 함께 고민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반자가 되고자 합니다.


카카오벤처스 정주연(Jade) 선임 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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