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삶에서 추방 당한 남자의 이야기

by 기록 생활자


지은이 알베르 카뮈 옮긴이 최헵시바

펴낸 곳 더 클래식


'그것은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이 책의 표지에는 이 문장이 적혀 있다. 사실 소설 속에서도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인공의 독백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는 젊은 남자(뫼르소)의 발걸음을 뒤쫓는다. 그는 어머니의 시신도 보지 않고 장례를 치른다. 젊은 그에게 죽음은 멀리 있고, 직시하기 싫거나 직시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는 한 여자(마리)를 만난다. 그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만 주인공은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다 레몽이라는 이웃집 남자의 부탁을 받고 편지를 한 통 써주게 된다. 그리고 이 편지가 발단이 되어 휴가를 떠난 바닷가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바닷가에서 아랍인 남성을 향해 네 발의 총알을 쏘게 되고 '그것은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고 표현한다.

우발적인 살인이었지만 이 일로 그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고, 장례식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보지 않은 일로 검사는 그가 계획된 살인을 했을 것이라고 몰아간다. 전혀 관련이 없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가 저지른 살인사건이 얽히게 되면서 그의 살인은 계획된 살인인 것처럼 포장되기에 이르고 그는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으로 재판을 받으며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삶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자각 없이 자신의 삶과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던 그는 예기치 못하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면서 삶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죽음은 어머니의 죽음을 대할 때까지만 해도 젊은 그에게는 멀리 있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그때부터 삶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삶이 소중해진 것이다. 그 전까지 그는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방관자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에 한 발자국 내딛게 된다. 자신의 삶에 그제야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랄까? 그러나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는 타인의 눈에는 이방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제에게 화를 낸다.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젊었던 데다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았던 그는 그제야 삶이 소중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고 소리 질렀다. 그는 또 하나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서면서 내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려 했다. 하나님 얘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133~134쪽)

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는 동안에는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살기도를 하는 이들이 죽음의 직전에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봐도 이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지 못하거나 잊은 채 살아간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젊은이로 묘사되어 있지만 늙은이처럼 삶에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며,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결혼을 하자고 얘기하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에게도 무미건조하게 '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하자'고 말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죽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우발적인 살인이었지만 그는 이 살인 사건을 계기로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그제서야 삶을 생생하게 느끼며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는 동안에는 삶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야 이를 깨닫는 '생의 부조리'.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삶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으로 다 읽고 난 후 그 깊은 여운에 며칠 동안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생명이 사그라져 가는 그때에 '약혼자'를 둔 것인지 왜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이 꺼져 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처음부터 다시 살 준비가 되었던 게 틀림없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35쪽)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덜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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