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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26. 2016

금발의 초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이케와키 치즈루, 이세야 유스케


영화 소개 글에 경계선 3부작의 시초라는 말도 있듯이 이 금발의 초원이라는 영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경계선 3부작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영화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감독이다. 특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만들 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촬영날 "다시는 조제를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울어버렸다."라는 말.


메종 드 히미코라는 영화를 보고 알았다. 아, 이 사람은 좀 다르구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뭔가 깨닫게 하려 하는구나. 그에게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경계선을 넘는 일이며,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져 있는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다름 아니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중년의 남성이, 영화를 촬영하며 울 수 있다니. 그것도 허구의 인물을 생각하면서. 그런 감수성이 너무나 좋았다.
 
이외수씨가 '다른 사람을 위해 울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어떤 새로운 것도 창조해낼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영화 금발의 초원


닛뽀리의 80년 인생은 오직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심장질환이 있던 그에게 연애란 감정의 사치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기에 그는 외출조차도 맘대로 하지 못하고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그랬기에, 치매에 걸리고 나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20대의 청년으로 돌아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경계선 3부작(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메종 드 히미코, 금발의 초원) 다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닛뽀리를 보면서, 왠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가 생각나기도 했다.좀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자꾸 겹쳐졌다.이누도 잇신 감독은, 닛뽀리의 늙은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닛뽀리가 생각하는 20대 청년의 모습으로만 닛뽀리를 보여준다. 만약 현실의 닛뽀리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었더라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만약 그랬다면, 관객이 닛뽀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 금발의 초원

닛뽀리는 오직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만 살아온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슬픔을 느낀다. 꿈에서 살아가는 것이 닛뽀리에겐 더 행복했을까?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지 않았고, 전쟁터에 나간 친구들도 살아 있는. 닛뽀리에겐 늙어버린 칸자키를 보는 것과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마돈나라고 불렀던) 그녀가 칸자키와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리수를 마돈나라 생각하며 지내는 편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금발의 초원

그래서 그는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는, 꿈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 닛뽀리의 모습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행복해보였다.
 

영화 금발의 초원

현실을 알아버린 닛뽀리에겐 그 후의 인생만큼 비참한 것도 없었을 테니까. 나리수는 닛뽀리의 집에서 도우미로 일하며,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이 두려워 행복으로부터 도망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리고 더는 도망가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재혼으로 동생이 되어버린 - 자신이 사랑하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알면서.
 
그래도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던 그녀는 언젠가 닛뽀리가 말했던 금발의 초원에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비극적 결말이라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름 희망적인. 그런 결말이었던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재밌게 봤던 분이라면 아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슬퍼서 좀 울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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