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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1. 2016

오슬로의 이상한 밤

궤도를 이탈해본 적 없는 자에게 찾아온 특별한 밤

기차는 정해진 길 위를 달린다. 그 기차를 움직이는 기관사 오드 호텐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제 얼마 후면 기관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정년퇴임을 하게 된 것이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그가 막연하게 꿈꾸는 것은 오슬로로 떠나는 것이다.
 
그의 삶은, 그가 운행하던 기차와 많이 닮아 있다. 그는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선로를 벗어난 삶은 꿈꿔 보지도 못했고, 모험 한 번 못해봤다. 그는 평탄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겁이 많은 성격 탓에 스키 한 번 못 탔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그의 동료들은 기관사로 정년퇴임하는 그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고, 그는 다음날 마지막 운행을 해야 한다며 황급히 술자리를 빠져 나오지만 그날 밤 한 꼬마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는 오드 호텐에게 자신이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달라고 하고, 마음 약한 호텐은 거절하지 못하고 아이 옆에 있어 준다. 하지만 아이가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아 아이 집에서 결국 하룻밤을 보내고 만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덕분에 마지막 운행 시간에 늦어 기차를 운행하지 못하게 된 호텐은 오슬로 여행을 앞당기기로 마음 먹고 친구를 찾아간다. 자신의 보트를 사겠다고 조르던 친구였다. 친구를 찾던 도중 잠시 서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그는 밀항하려는 사람으로 오해 받아 경찰서까지 끌려가고 경찰서에서 알몸 수색까지 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나기는 하지만, 그는 보트를 팔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이 이상한 밤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간단하게 요기하고 맥주 한 잔 하러 들른 식당에서는 갑자기 주방장이 잡혀가 식사도 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눈이 온 다음날 길까지 얼어 깨금발로 걷는데 미끄럼 타듯 내려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수영장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하며 일탈의 자유를 잠시 누리던 그는 그마저도 알몸으로 뛰어 들어오는 남녀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수영장에 갑자기 알몸으로 뛰어 들어온 남녀에게 들키지 않고 황급히 수영장을 빠져 나오느라 그는 신발도 제대로 못 찾아 빨간 하이힐을 신고 나온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던 중, 그는 길 위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오드 호텐에게 자신을 외교관이라 소개하고 호텐은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고 택시를 잡아 그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그의 집에서 간단하게 술 한 잔을 하던 중  외교관은 기관사 옆자리에 자신을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대화를 나누던 중 호텐은 오슬로를 여행할 계획임을 밝힌다. 외교관은 자신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차로 그를 오슬로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다. 호텐은 그의 제안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평생 소원이었다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두 사람은 다음날 함께 차에 올라탄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외교관은 얼마 못가 갑자기 숨을 거둔다. 원래 지병이 있어 건강이 좋지 못했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한 것이다. 호텐은 그를 차에 내버려두고, 함께 차에 올라탔던 외교관의 개 몰리를 데리고 차에서 내린다.
 
그는 결국 오슬로로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죽은 외교관의 집을 다시 찾아가는 호텐은 그곳에서 외교관의 동생을 만난다. 외교관의 동생은 자신의 직업은 외교관이라 밝히고 형은 천재 발명가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인정 받지 못했다고.
 
호텐은 그제서야 어디론가 늘 떠나고 싶어했지만, 떠나지 못했던 외교관의 형이 동생의 삶을 동경해 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외교관의 죽음으로 무언가를 느낀 호텐은 어머니가 생전 타고 싶어했던 점프 스키도 한 번 못타고 나이 들어버린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점프 스키를 타고 예전과는 달라진 밝은 얼굴로 기차에 올라탄다. 기관사 옆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오슬로에 도착한 그의 얼굴은 예전과는 다르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자신을 마중 나온 식당 여주인을 보며 밝게 웃는 오드 호텐. 항상 정해진 길만을 달려왔던 그의 삶에 있어 이 이상한 밤들은 일종의 탈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원래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고, 좋아하는 일만 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다.
 
그는 외교관과의 만남을 통해 그런 것을 깨닫는다. 식당 여주인을 좋아하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애써 드러내지는 못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슬로에 도착한 호텐의 표정에서 이전과는 달라지리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누구나 평탄하게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평탄하기만 한 삶 속에서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때론  엉망으로 찌그러지는 하루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방황하는 날들도 겪어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도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과 의미가 있고 그런 날들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평탄하게 삶을 살아왔던 - 그래서 정년 퇴임 후에 뭘 해야 할지 몰랐던 호텐의 이 이상한 밤은 그에게 선물이 됐다.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살아 있는 동안은 무엇이든 시도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하루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 곳곳에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꽤 많지만, 기관사들만 모인 자리에서 기관사들이 기차 소리를 녹음해 그걸  DJ처럼 한 기관사가 틀어주면 그 소리를 듣고 기차 이름을 말하는 장면이 꽤 재미있었다.
 
소설적 구성을 지닌 영화였던 것 같다. 궁금하다면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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