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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09. 2018

당신의 부탁

남겨진 사람과 가족의 형태

어느날 가족이 된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 어떻게 보면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이인 종욱이(윤찬영)는 아버지를, 어른인 효진(임수정)은 남편을 잃었다. 두 사람은 혈연 관계가 아니다. 종욱이의 아버지는 오래전 종욱이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과 사별을 한 것 같다. 종욱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어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할머니와 헤어지게 된다. 아이가 할머니와 살던 아파트를 팔아 요양병원비를 충당하려는 친척들로 인해  종욱이는 아파트를 비워줘야만 했다.  갈 곳이 없어진 종욱이는 아버지와 재혼한 여성 효진과 함께 살게 된다.

남편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또 종욱이의 친어머니는 어떻게 사망했는지 그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영화는 다루지 않는다. 그냥 '죽은 사람'으로서 언급될 뿐이다. 두 사람의 부재는 종욱이에게, 또 남편의 부재는 효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영화에서 종욱이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는 부재하므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종욱이는 효진을 '아줌마'라고 부르고, 효진은 그 소리가 듣기 거슬릴 때가 있으나 종욱이에게 '어머니'라 부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서 당신의 부탁은 남겨진 아이(종욱이)를 남겨진 아내(효진)가 보살펴 달라는 죽은 남편의 부탁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실제로 효진이 종욱이가 '어머니'라 생각해 찾아다닌 여성에게 (그러나 사실 종욱 역시 그녀가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진다) '어머니'라고 말해주기를 부탁했기에 효진이 자신의 남편이 자신과 재혼을 하기 전, 함께 살았던 여성에게 한 부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종욱이 자신의 친어머니도 아닌 여성을 찾아다녔던 이유는 스스로를 '버림 받은 아이'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종욱이는 자신을 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종욱이는 혈육이 아니라서 자신을 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 여성은 신병으로 무속인이 되었고, 그런 몸으로 종욱이의 아버지 곁에 있을 수 없어 떠난 것이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도망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종욱이는 여자사람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종욱이의 친구는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하고 입양을 해줄 가족의 집에 들어가 숙식하며 출산 기간 동안 몸조리를 하며 지낸다. 친구가 뱃속의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종욱이는 그 아이를 키우고 싶어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지만 그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던 것 역시 자신이 버림 받은 아이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버림 받는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그의 여자사람 친구는 깨뜨린다. 아이에게 "좋은 가족을 선물해주는 거니까"라는 말로 말이다.  이 장면에서 얼마전 읽었던 '아침이 온다'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특별 양자 결연은 부모를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아이를 원하는 부모가 아이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한 겁니다. 모든 활동은 아이의 복지를 위해 그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겁니다." (아침이 온다 110쪽, 츠지무라 미즈키)

이 그네 위에 앉아서 종욱에게 효진은 말한다. 누가 키워야 하느냐고 물으면 너희들이고 동시에 누가 키워서는 안 되느냐 물으면 또 너희라는 이야기를.


당신의 부탁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그리지만 이들의 모습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남편의 기일에 남편이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와 아이를 유산했을 때 남편이 사다준 곰탕을 올려 놓으며 남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효진의 모습과 아버지가 초코 케이크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몰랐던 아들이 효진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결국 죽은 사람은 그 사람을 알았던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 속에서 '기억'으로 존재한다.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삶,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의 모습을 영화는 덤덤하게 그려낸다. 담백한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효진은 남편이 떠난 빈 자리를 그의 모습을 닮은 종욱을 통해 메우려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종욱이를 키우며 종욱이에게 의지해 남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종욱이는 그녀에게 '삶의 이유'같은 것도 되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단지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삶을 그저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네 위에 앉아 "왜 저랑 같이 살아요?"라는 종욱의 질문에 그녀는 말한다.


"글쎄, 살아보니까 알겠더라. 뭔가를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한다는 건 받아들이는 거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한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해."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에게 보호자가 되어주는 효진과 그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거리감을 느끼는 종욱.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 효진의 도움을 거절할 수 없는 종욱은 영화 말미에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자를 찾아간다. 여자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 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종욱의 모습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어쩌면 종욱은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효진을 멀리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종욱의 외로움을, 그런 마음까지도 효진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기에 그 여자에게 아이의 어머니라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일 것이다. 효진은 자신이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굳이 어머니 노릇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그녀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들이 종욱을 받아들이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 같다.

어찌됐든 앞으로도 두 사람은 잘 살아갈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해 삶을 걸어가는 느낌의 영화였다. 구태여 억지로 두 사람의 유대를 강화하려 들거나 가족의 모습으로 담지 않은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영화였고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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