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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y 07. 2017

열흘 밤의 꿈

열흘 밤, 당신이 꾼 꿈의 조각

 
영화 열흘 밤의 꿈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나츠메(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영화화한 것으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야마구치 유다이, 토요시마 케이스케, 시미즈 다카시 등 일본의 내노라 하는 10명의 감독들이 참여한(천재 감독들이라고도 한다) <옴니버스 영화>다.
 
몽십야는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을 한데 모은 소설 전집이라고 하는데 읽어보질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를 연구하는 사람의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에 의하면 이 영화는 원작과는 좀 많이 다른 모양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읽고 이 영화를 접한 사람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영화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뭐, 아무튼 이 리뷰는 원작을 접하지 않고 영화만 보고 작성한 리뷰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 영화는 열흘 밤 동안 꾼 10개의 꿈에 관한 영화다. 굉장히 기묘하면서도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그런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꿈에 관한 영화라서 그런지...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라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까지 느낄 정도였다. 뭐,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들을 이 글을 통해 풀어볼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도 궁금하고 그렇다) 사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자, 이제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첫번째 밤
백년 동안 함께 사는 부부.

첫번째 꿈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반영된 듯 보이는 남자 소설가와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부인은 죽고, 소설가는 고독 속에 빠져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그는 죽은 부인을 잊지 못하고, 죽은 부인의 환영을 본다. 백년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이 영화 속에서 소설가인 남자는 책상 앞에 앉아 오로지 집필 활동에만  전념한다. 그의 아내는 얼마나 고독했을까? 아내는 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남자는 소설만 쓴다. 살림을 꾸려나가는 건 오로지 아내의 몫이다.
 
아내는 자신에게 무심한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는 대신, 금붕어를 사서 키운다. 그러던 어느날 금붕어가 죽는다. 아내는 키우던 금붕어가 죽었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소설가인 남편은 '금붕어는 원래 잘 죽으니, 다른 것을 사라'고 말한다. 그러던 아내가 어느날 죽었다.
 
아내를 대신할 사람을 고용해 가게를 운영해나가지만, 여전히 남자는 현실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죽은 아내의 환영을 매일 마주하게 되는 남자는 그것이 "실제"인지 "허구"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금붕어는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지만, 죽은 아내는 다시 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여러 마리의 금붕어가 있다고 해도 내가 마음을 쏟고 사랑한 - 그 각별한 애정을 가진 존재의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그의 마음은 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거꾸로 가는 시계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는 아내는 죽고 없지만, 아내가 없는 시간, 현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의 시간이 과거에서 멈춰 있고,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을 사랑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바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에 원래 끝은 없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런 내 마음의 상태가 곧 영원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에 머무른다. 미래에 있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현재의 사랑을 영원처럼 여기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그 사랑이 영원한 사랑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두번째 밤
스승과 제자

두번째 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무라이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스승으로 보이는 노승이다.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제자와, 스승의 대화가 한 마디의 소리도 없이 자막으로만 처리되어 등장한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그 어리석음으로 깨달음이 어느 순간 자신을 찾아올 거라 믿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죽으려고 했으나 그는 죽지도 못한다. 스승은 좌절하는 제자에게 답은 네 안에 있다고 가르친다.


세번째 밤
돌부처와 아이

세번째 밤에 등장하는 인물은 나쓰메 소세키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다. 여러명의 아이와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려 하지만 늘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덕택에 작품에 몰두할 시간은 커녕, 낮잠 조차도 편안히 자지 못한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나쓰메 소세키는 아내가 잠시 봐달라고 맡긴 딸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가 잠이 든다.
 
그 꿈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 역시 아이들을 돌보다가 꿈을 꾼다. 강가에 서 있는 아내가 강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이 아이를 가질 확신이 없다'고 말하는 그런 꿈이다. 과거 그의 아내는 나쓰메 소세키와의 사이에서 생긴 첫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 현실의 그의 아내 역시 임신을 한 상태다.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모습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그 아이를 별로 원하지 않음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여섯번째 아이는 괜찮을 거라 말하면서, 그를 안심시키고 그날 밤 나쓰메 소세키에게 돌부처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의 아내는 어렸을 때 살던 집 근처에 돌부처가 아주 많았는데, 그곳에서 자주 놀았으며 어느날 실수로 돌부처 중 하나의 머리를 부쉈다는 이야기였다.
 
첫번째 아이를 잃었을 때, 머리 없는 돌부처의 꿈을 계속 꿨다는 고백과 함께. 그 꿈 속에서 아내는 돌부처의 머리를 계속 부수고, 그것을 도로 제자리에 놓는다고 말하면서 지금 임신한 여섯번 째 아이가 첫번째 아이의 환생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 순간, 아이가 잠에서 깨고 나쓰메 소세키는 아이를 아내 대신 돌보겠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업고 돌부처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이는 어렸을 때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한다. 아들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나쓰메 소세키는 아이를 버리려고 한다.
 
7개의 돌부처 중 하나가 부서지자, 나쓰메 소세키는 초조해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곳에서 어렸을 때 자기 자신을 죽였고, 그 이후로 어렸을 때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쓰메 소세키는 여섯번째 아이를 낳고 7번째 아이까지 낳지만, 7번째 아이가 돌연사 하는 일을 겪는다. 딸 아이를 안고 앉아 있다가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그 꿈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써 내려가는데 아내가 꿈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똑같은 말을 하고 나쓰메 소세키는 놀란다. 그리고 아내의 배 위로 손을 갖다 대려는 듯 손을 뻗는다. 마지막에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리고 그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현실의 그의 아내는 아마 임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꿈 속에서 했던 말을 현실에서도 내뱉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꿈이 현실과 연결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를 별로 원하지 않았고, 아이들 때문에 집필 활동에만 온전히 매달릴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가 첫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그로 인해 생긴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자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아이에 대한 원망과 분노, 미움 같은 감정들이 첫번째 아이를 잃게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번째 아이를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꿈 속에서 말이다. 물론 그가 죽인 건 어렸을 때의 자기 자신이었지만. 아이는 종종 부모의 분신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렇게 불리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는 덜 자란, 다 자라지 못한 자아, 미성숙한 자아나, 자의식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의식이 유년기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꿈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마주한 자기 자신은 잃어버린 자의식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을지도 모른다.


네번째 밤
피리 부는 사나이와 사라진 아이들


네번째 밤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나쓰메 소세키다. 나쓰메 소세키는 강연을 위해 어렸을 때 살았던 마을을 찾는다. 초대를 받고 갔지만, 역에 마중 나오겠다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시 찾은 마을엔 노인들만 가득하다. 이 마을에는 어린 아이들이 죄다 실종되어 젊은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았던 것.
 
이 이야기는 약간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를 생각나게 했다. 이 이야기를 변형한 것으로도 보였다. 쥐를 잡아주면 상금을 주겠다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초대해놓고,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의 쥐를 다 잡아 주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자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돈을 주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로 그 마을의 어린 아이들을 유혹해 모두 데리고 사라졌다는 그 잔혹한 동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어렸을 때 혼자만 피리를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지 않았던 어린 소년이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마을에서,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해내고 - 그때 사라진 친구들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억하겠다고 말하면서, 그가 나무에 칼로 바를 정자를 쓸 때 위에 새겨진 글자가 아주 많았던 것을 보면, 그는 잊고 기억하고 다시 잊기를 무수히 되풀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매년 실종된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실종된 아이들은 어느새 잊혀진다.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그 일은 계속 되풀이 된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나갔다가, 실종된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유골로 발견되어 나타난 개구리 소년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실종된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얼굴과 이름들을 다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했던 나도...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잊어버리겠지. 실종자의 가족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텐데... 그저 남의 일이라고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이 이 이야기를 보는 내내 명치 끝을 아리게 했다.


다섯번째 밤
가면 쓴 부부의 트라우마

다섯번째 밤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다. 바람을 피다가 교통 사고로 아이를 잃어버린 기혼의 젊은 여자와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그 사고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도 태연한 척 하는 남편의 이야기. 두 사람은 평화를 가장한 채 살아가지만, 그의 아내는 매일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가는 악몽을 꾸고, 그곳에서 얼굴이 일그러진 자기 자신을 만난다.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그의 남편도 겉으론 태연한 척 웃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붕대로 칭칭 감긴 만신창이 상태. 붕대를 감은 또 하나의 자신과 그들은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마음을 감춘 채. 트라우마가 일상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끔찍한 사고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부부의 일상이 얼마나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지...그것을 잘 보여준 이야기였다고 생각된다.


여섯번째 밤
내면의 아름다움을 조각하는 조각가

운케이라는 조각가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운케이 역을 맡았던 배우가 춤을 매우 잘 춰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멋있었다. 이 이야기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다.


일곱번째 밤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인데,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하시길.
 
이외에 열번째 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열번째 밤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츠야마 켄이치 때문에 보게 된 영화라서 열번째 밤의 이야기도 무척 내 마음을 즐겁게 만들었다. 열번째 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생긴 한 청년'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다가, 어느날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해 그녀를 따라갔다가 <자신의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추악한 본성>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덟번째 밤과 아홉번째 밤의 이야기는 직접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 설명을 생략했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이야기는 열번째 밤의 이야기와, 세번째 밤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간만에 시각적 즐거움을 맛 봤다. 영상미도 뛰어난 영화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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