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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02. 2017

파수꾼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는가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파수꾼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경계하여 지키는 자' 여기 세 명의 소년이 있다. 이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친구'라는 단어는 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또는 '나이가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는 그 관계는 사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단순히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가깝게 오래 사귀었다고 해서 갖다 붙일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의 이름 같은 것은 아니다.
 
실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나와 통하는 게 있는 사람', 또는 '나를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최소한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 속해야 하며 그런 사람에게 갖다 붙이는 '이 사람은 나와 그만큼 가깝다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호칭'인 것이다.


영화 파수꾼

그런데 이 영화 속 세 사람의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친구이지만, 실제로는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이 파수꾼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 이들은 왜 서로에게서 자신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을까? 이 영화는 그 물음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의 이름은 기태(이제훈). 기태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이제 곧 고3이 되지만,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기태는 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짱'이다. 불량기가 가득해 보이지만, 그런 기태에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동윤이와 고등학교에 들어와 사귀게 된 친구 희준이다. 친구들과 가끔 폐역사의 철로 위에서 야구를 하기도 하고, 여행도 가지만 - 어느날 기태는 자살을 한다. 기태가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빗물이 고여 만들어낸 웅덩이 같은 그 자리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그 웅덩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 비친 세 친구의 모습을 담는다.


이 영화는 외로운 한 소년이, 그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주목을 받으려 하고, 관심 받으려 하다가 결국 그로 인해 완전히 혼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외롭다고 말하면 됐었는데, 이 소년은 그걸 하지 못한다. 안 한게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소년의 주위에는 소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한 파수꾼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이 친구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는다. 소년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관심을 끌기 위해'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기태는, 관심이 필요한 아이였다.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기태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아들과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몰라서 학교에 수소문을 해서 알아낸다. 그것도 아들이 죽은 다음에 한 일이었다. 기태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생일 선물로 준 야구공을 애지중지 하고, 그 야구공 때문에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아들에게 통 관심이 없다. 기태는 친구들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기태는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부모의 관심이 필요했지만, 투정을 부리고 싶어도 받아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기태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기태는 주목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아이다. 부모에게서조차 제대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태는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고 싶고, 그렇게 되기 위해 종종 주먹을 사용한다. 기태는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기를 원한다.


외롭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아무도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기태는 폭력을 사용한다. 기태는 외로워서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힘으로 누군가를 자신의 주변에 묶어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기태와 친구들의 우정에는 균열이 생긴다. 하지만 기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영화 파수꾼

기태는 힘으로 친구들을 제압하고 지배하려 든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철저하게 외톨이가 된다. 기태는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혼자가 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희준은 좋아하는 여학생이 자신이 아닌 기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태와 멀어진다. 기태도 그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그 여학생이 고백을 했을 때 자신 때문에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희준은 모른다.
 
희준은 기태 때문에 종종 자존심이 상한다. 늘 기태에게 얻어 맞던 희준은 전학을 가게 된다. 기태는 희준에게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희준은 기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희준은 기태로부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지만, 기태가 죽음으로 인해 그는 끝까지 기태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영화 파수꾼

동윤은 중학교 때부터 기태와 친했지만, 사실은 기태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태와 함께 다니면 기태의 힘으로 인해 보호 받을 수 있지만, 기태의 보호 아래 있는 동윤은 동시에 기태가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동윤은 기태와 표면적인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동윤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 대해 기태가 나쁜 소문을 흘리고 다녀 그 여자 친구가 자살기도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기태를 멀리하게 된다.
 
기태는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지만  동윤은 기태를 믿지 않는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기태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를 풀어주지 못한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기태는 주먹을 쓴다. 그래서 상처 받은 마음을 애써 감춘다. 하지만 친구들이 정색하고 화를 내면 어쩔줄 모른다. 쩔쩔 맨다. 친구들이 떠나버릴까 봐 무섭고 두렵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무작정 미안하다고 말한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기태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다 해결되는 것인줄 안다. 기태는 제대로 관계를 맺는 법도, 사과하는 법도, 때로는 제대로 화를 내서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것도 모른다. 기태는 힘으로 친구들을 제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친구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무섭다. 그 마음을 들키는 것이 무서워서 주먹을 쓴다. 강해 보이는 자신을 친구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먹만 휘두른다.
 
그래서 친구들은 기태를 떠난다.  친구 관계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어야 친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태는 그것을 몰랐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깔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서 상처를 드러내지만, 그의 진심은 이해받지 못한다.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세 명의 학생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지키느라 경계선 주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손을 조금만 더 내밀었다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려 했다면, 그 진심을 읽으려 노력했다면 서로에게 파수꾼이 아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긋나 버린, 어디서부턴지 모르게 어긋나 버린 관계에 대한 이 아픈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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