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낳아 사람을 키운다는 것의 의미, 사람이 사람이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난 사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때 안 좋은 선생님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남동생에게 촌지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대놓고 구박하며, 언질을 주는 늙은 여교사도 있었다. (결국 그 늙은 너구리 같은 여교사는 촌지를 받아먹고 아이들을 편애하는 사실이 알려져 교직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하지만 '은사'라고 부를 수 있는 몇 명의 선생님들을 만난 적도 있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을 찾으러 사방팔방을 헤매고 다녔던 남자 선생님도 계셨고, (그 아이들은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계모가 구박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그 아이들은 며칠동안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자신을 찾아다닌 선생님의 진심에 감동 받아 학교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스승의 날에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감성 충만한 남자 선생님도 계셨다. 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 밥을 먹는 아이와 일부러 함께 식사를 하고, 말더듬이인 학생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오히려 발표를 더 많이 시키고 격려해줬던 선생님도 계셨다.
한 노처녀 선생님은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선생님이었다. 좀 까다로운 성격의 선생님이었다고 할까? 아이들은 왜 그 선생님이 시집을 못 갔는지 알 것 같다며 그때마다 구시렁댔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그런 성격의 선생님이었다고 해야할까? 난 늘 그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B사감을 떠올리곤 했다. 목끝까지 늘 단정하게 단추를 채웠던 여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이 안 좋으면 혼을 내기도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난 혼난 기억은 없다. 국어 성적만큼은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성적이 좋았는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던 터라...-_-;;)
그 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그때 내게 일어났던 그 사건과 이후의 국어 시험 시간에 시험지 뒷장에 선생님이 적어 놓은 시 때문이었다. 그 시는 정일근 시인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라는 연작시 중 하나였다. 그 시를 읽는데 정말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고 할까. 그러면서 동시에 선생님이 얼마나 우리에 대한 애착이 크고 사랑하는지 깨닫게 됐다. 강해 보여도 여린 소녀의 감성을 지닌 선생님이었다는 사실도.
이후에 그 선생님을 다시 보게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난 정일근 시인의 시 '녹색 잉크'를 알게 됐고 그 시를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꼭 내 이야기 같아서 공감이 됐다. 그러면서 그 시 속에 등장하는 그런 선생님이 내게도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그 선생님들을 생각하곤 했다. (그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 받고, 어린왕자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도 난다. 그 책을 선물해주시면서 '보아구렁이를 삼킨 코끼리를 모자'로 보는 눈을 잃지 말라고 책에 적어주셨다. 내게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쓴다고 칭찬도 해주셨고 (글쓰기에 소질이 있음을 알려주신 분), "XX야, 넌 참 상상력이 풍부하구나"라고 일기장에 적어 주시기도 하셨다. 소중하게 평생 간직하려 했는데 나중에 동생이 나 몰래 선생님 낙관이 찍힌 그 책을 학급 문고에 내버려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종이접기 작가시기도 하셨는데.나중에 전시회도 여시고...아이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9
-첫 눈
정일근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첫눈이 오는구나
은유법도 문장성분도 잠시 덮어두고
저 넉넉한 평등의 나라로 가자
오늘은 첫눈 오는 날
산과 마을과 바다 위로 펼쳐지는
끝없는 백색의 화해와 평등이
내가 너희들에게 준 매운 손찌검을
너희들 가슴에 칼금을 그은 편애를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구나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순결의 첫눈을 함께 맞으며
한 칠판 가득 적어놓은
법칙과 법칙으로 이어지는
죽은 모국어의 흰뼈를 지우며
우리들 사이의 먼 거리를 하얗게 지우자
흰 눈발 위로 싱싱히 살아오는 모국어로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너희들은 나의 이름을
사랑과 용서로 힘차게 불러 껴안으며
한몸이 되자
한몸이 되어 달려나가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많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단순히 그것을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고 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사람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 속에 꿈을 키워주는' 아주 가치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못 찾아뵈서 정말 죄송할 따름이고, 죽는 날까지 감사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음 속으로나마 큰절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