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상자

나와 남편과 아이의 코코넛

참을 수 없는 코코넛 열매의 밍밍함과 우리 가족의 공통분모

by 기록 생활자

코코넛 음료수를 볼 때마다 과거에 같은 과 선배와 함께 해변에서 코코넛 음료수를 파는 아르바이트에 5분 대기조로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 코코넛 음료수란 코코넛 열매에 빨대가 꽂혀 있는 음료수였다.

그 선배는 취미로 킥복싱을 했는데 킥복싱 선수로도 활약하는 남자 선배였고 실력이 출중한 편이었는지 가끔 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래서 남자 후배들이나 동기들이나 그 선배를 잘 따랐으며 약간은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잘생긴 편이라 그런지 항상 주위에 여자들이 많았다.

코가 높고 잘생겨서 이름 앞에 ‘코’를 붙여 그 선배 이름을 말하는 같은 과 동기 언니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 선배 이름이 철수라면 ‘코철수’라고 불렀다. 또 그 선배는 눈썹이 굵고 진한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눈썹 부리부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당사자인 그 선배님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5분 대기조란 연락을 하면 5분 안에 튀어나와 코코넛 음료수를 판매하는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여름방학이라 하겠다고 했다. 왠지 코코넛 음료수를 판매하는 일은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고 하루 만에 그 아르바이트는 없던 일이 됐다. 먼저 판매에 나섰던 남사친(남자사람 친구) 과 동기의 말에 의하면 잘 팔리지 않아 하루 만에 아르바이트가 없던 일이 됐다고 했다.

왜 잘 팔리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맛이 더럽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맛이 없으니까 안 팔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간 사람이 환불 해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맛이 없길래?”


그렇게 코코넛 음료수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될 무렵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남자친구(현재 남편)와 해변을 걷다가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판매하는 것을 봤다. 남자친구는 그 코코넛 열매 음료수가 맛있겠다며 사려고 했고, 난 더럽게 맛 없다고 들었다고 말려봤지만 남자친구는 그것을 샀다. 그리고 한 모금 마셔보고는 맛있다며 내게도 한 모금 마셔보라고 했다.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맛있다고 해서 마셔봤다. 오만상이 찌푸려지는 그런 이상한 맛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남자친구는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맛있다며!”라고 따지자

“맛 없는 거 나만 먹을 수 없지!”라고 했다.

우리는 몇 모금 마시지 못한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해변가에 비치되어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해변가에는 곳곳에 먹다 남긴 코코넛 열매 음료수가 널브러져 있었고 이미 그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 안에도 많았다. 마치 그 원통의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코코넛 안 먹을거면 저한테 주세요”라고 말하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시간은 흘러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가 커서 걷기 시작할 무렵에 가족 나들이를 갔는데 코코넛 열매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아이가 사 달라고 했고 나는 맛 없다며 먹지 말라고 말렸지만 남편은 아이에게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사주었다. 아이는 빨대로 코코넛 열매를 한모금 마시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맛없다고 안 먹겠다고 했다.

나는 코코넛 음료수를 먹는 아이의 사진을 한장 남겨주었다. 그 사진이 아이가 최초이며 마지막으로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먹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아이에게 코코넛 음료수를 사주었느냐고 아이가 남긴 코코넛 음료수가 아까워 한모금 빨아당긴 후 도무지 먹을 수 없어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이런 맛 없는 것도 먹어봐야지. 그리고 직접 먹어봐야 맛 없는 줄 알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땀을 많이 흘려서 (여름이었다) 수분 보충을 해주기 위해 사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 후로 길에서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봐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코코넛은 빠다코코넛이 최고다.

(*코코넛 열매 음료수를 판매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그냥 생각나서 끼적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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