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상자

송편과 치킨

추억의 맛

by 기록 생활자

어린시절, 해마다 추석이면 친척들이 모인 집안에서 온식구가 둘러앉아 솔잎을 따다 올린 송편을 찌곤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가 빚은 송편은 언제나 형편 없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나중에 시집 가서 예쁜 딸을 낳는다던 말을 듣고는 하나라도 더 예쁘게 빚으려 노력하던 어린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명절날 집안 풍경도 많이 바뀌어 언젠가부터 떡집에서 산 송편을 차례상에 올리게 되었다. 솔잎 향이 나던 아무 색도 들어가지 않은 내가 빚은 그 옆구리 터진 송편이 가끔 오색 송편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내가 빚은 그 형편 없고 맛도 별로였던 것 같은 송편이 소나무를 볼 때마다, 또 여러가지 색의 옷을 입은 송편을 볼 때마다 그립게 떠오른다.


추억의 음식은 또 있다. 바로 운동회날 먹었던 치킨이다.

운동회날, 아빠와 엄마, 할머니와 고모, 사촌 오빠까지 모두 모여 응원을 왔다. 운동 신경 빵점인 나는 박을 터뜨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박을 터뜨리고 나면 점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달리기 꼴찌를 하고 온 내게 늘 핀잔을 주곤 하였다. 엄마의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나면 학교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편 돗자리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치킨과 엄마가 준비해온 김밥과 음료수, 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모두 모여 앉아 먹던 그 양념 치킨이 지금도 생각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년 우리 형제들의 운동회를 보기 위해 모였던 부모님과 할머니, 고모와 사촌 오빠의 얼굴이 요즘도 치킨을 먹을 때마다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한다. 가끔 엄마는 아무도 응원을 오지 않아 시무룩하게 있는 반 친구를 불러 같이 밥을 먹자고도 하셨다. 빙 둘러앉아 먹던 점심 밥이 있어 즐거운 운동회의 기억이 매년 먹었던 양념 치킨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양념 치킨을 좋아한다. 양념 치킨을 먹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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