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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Feb 01. 2017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 받지 못하고,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던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임현성, 한성천, 손상범, 김서희


내무반에서 군기 반장 역할을 하며 나름 군 생활 잘해왔다고 자부하는 유태정. 그리고 명문대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해 군대 내 차별과 억압, 폭력을 보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내부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승영.
 
그리고 이런 승영의 후임으로 들어온 어리바리한 허지훈.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이 세 사람의 일그러져 가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어리바리한 지훈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가 인상적이었는데 - 이 영화를 만든 윤종빈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놀. (배우해도 될 정도로 연기도 잘하시는 듯)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

군대는 서열을 중요시하는 곳이다. 작대기 하나, 작대기 두개. 이렇게 부르는 계급장은 군대 내에서는 '계급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그전에는 작대기가 많아질수록 군 생활이 편해진다...정도로만 이해했다면, 단순히 편해지는 것 이상이 아니라, 어떤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아랫 사람을 억압하고 자신이 받아왔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고스란히 아랫 사람에게 대물림할 수 있고, 해소하는 어떤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승영은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다행히 상사가 중학교 동창이었고, 군대 내에서 그의 별명이 미친 개였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던 탓에 승영은 괴롭힘을 덜 당하면서도, 할말 다 하면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

그래도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태정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승영은 그 편지를 위의 사람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그 일로 상사와 다투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태정이 개입해 그를 혼내는 일이 발생한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하에 태정은 중학교 동창인 승영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후 태정은 군대를 제대하게 되고, 승영은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온 지훈이에게 잘 대해주지만 - 지훈이 점점 말을 듣지 않게 되자 태정 처럼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이를 견디다 못한 지훈은 화장실에서 자살한다.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

군대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고 호언 장담했던 승영은 그들과 다를 바 없게 변한 자신의 모습에 깊이 좌절하고 실망한다.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훈이 죽은 후 휴가를 나온 승영은 태정을 만나 지훈이 자살한 일과 자신이 그로 인해 받았던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 일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태정은 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입이 안 떨어졌던 승영은 지훈의 얘기를 꺼내는 대신 그에게 자신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달라고 하지만 태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느닷 없이 만나자고 해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 할 시간을 빼앗는 승영이 귀찮고 성가실 뿐이다. 어쩌면 같이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승영이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이 담긴 편지를 썼던 일 때문에 그를 동성연애자로 오해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태정은 승영을 떠나고 싶어하고 빨리 군대로 복귀하라고 말하지만, 승영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승영이 태정을 찾아갔던 것은 태정과 승영의 관계가 승영 자신과 지훈의 관계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승영은 자신이 태정을 용서하고, 태정에게 지훈의 일을 용서 받으면 남은 군생활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더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영은 끝내 누구에게도 용서 받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을 선택한다.
 
태정은 승영에게 화를 내고 그냥 여관을 나온 일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갔다가 승영이 욕조에서 자살한 것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끝내 태정 역시 용서 받지 못했다.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스스로를 용서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용서 받으려는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강한 죄책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군생활은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 모두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이다.
 
용서 받고 싶어했고, 용서 하고 싶어했지만 - 아무에게도 용서 받지 못하고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던 두 사내의 이야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군대 내 폭력과 억압. 그것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변화도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지금 군대에 막 입대하려는 사람, 그리고 군대에서 제대할 날이 가까워져 오는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변하면 환경도 변하기 마련이다.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군생활. 군대 특성상 어렵겠지만 - 그래도 그 속에서 서로 노력한다면 사람이 충분히 바꿔나갈 수 있는 게 군 문화 아닐까?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폭력이 벌어지는 그곳이 설사 군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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