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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y 31. 2017

아내가뭄

아내에게만 일어나는 가뭄 현상

이 책의 제목에서 이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일찍이 가사노동은 여성의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예전에 내가 알던 어떤 분은 딸들에게 가사노동을 전혀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시집 가면 평생 하게 될 텐데 미리부터 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미리 해봐야 시집 가서 잘 한다며 일찍이 가사노동을 시켜온 엄마 밑에서 자란 내게 그 중년 여성의 말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 왜 우리 엄마는 설거지와 밥 하는 것, 청소와 빨래까지 청소년기의 우리들에게 시켰을까?"

새삼스레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반쯤은 바쁜 엄마를 도와드릴 생각으로 자청해서 했던 것도 있었다. 우리 엄마는 일하는 엄마, 워킹맘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엄마에게도 아내가 필요했던 거였구나"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도 생각났다. 그래서 딸을 살림 밑천이라고 하는거구나 싶었다.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존재였고 또 딸이라 엄마의 마음을 잘 알아서 도와주는 측면이 있어서 그런거구나 싶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가사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실 가사노동이라 불리는 집안일은 살아가기 위해 반복적으로 행해야 하는 노동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자도 독립해서 혼자 살면 일정 부분 가사 노동을 할 것이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도와주시기도 하겠지만)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그 일은 어째서 결혼과 동시에 여성의 전유물이 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여성은 아이를 직접 잉태하고 낳고 키워야 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실 남자들에게 유리한 제도인 것 같다. 아내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지라 이 책의 제목 '아내 가뭄'이 마음에 더 와 닿기도 했던 것 같다.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거나 그만두기를 권유 받고 기혼인 경우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지장을 받는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아이가 없는 상태였음에도 "그래서 아이는 언제쯤 낳을 생각이시죠?"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회사도 있었지만. 아이가 없는 경우에도 기혼 여성에게는 취업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은데 자녀까지 있는 경우라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은 아이가 있는 여성을 기업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썼다가 복직한 후 얼마되지 않아 휴가를 쓰려고 하다가 해고된 여성을 봤다. 이 책에도 이런 사례가 나온다. 아내 대신 육아휴직을 썼다가 육아휴직 전날 회사로부터 복직하면 정리해고가 될 것이라는 전화 통보를 받는 어느 남편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저자는 '전업주부 아내'를 무급 노동을 위해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노동은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안 했을 때만 티가 난다. 반복적인 이 노동은 죽어야만 끝이 나는데 가정에서는 주로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남자들은 어쩌다 거드는 것을 도와준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식으로 생색내듯 그렇게 말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이건 살아가기 위해 그냥 해야 하는 일이야. 누가 누굴 도와주는 게 아니지."

물론 이 세상 남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남자들은 가사 분담을 정확하게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계부양자가 대체로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 기사 페이지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용감한 아빠 늘었다...작년 남성 육아휴직 56% 급증"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용감한 일이라니.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일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고민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404쪽)

저자는 가사노동을 통해 아내에게만 일어나는 아내가뭄 현상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남녀평등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궁리하게 한다. 전업주부 아빠가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편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 읽어보면 좋을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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