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타인의 삶을 훔치다

by 기록 생활자

타인의 삶을 훔쳐서 사는 남자 '벤 브래드포드'의 이야기. 신문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소설인데, 신문에 소개된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월스트리트에서 꽤 성공한 변호사다. 아름다운 아내도 있고 가정도 잘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길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뭔가 비어 있는듯 허전함을 느낀다. 꿈은 포기했지만, 완전히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그는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의 이웃에는 게리 서머스라는 사진작가가 살고 있었는데, 게리 서머스는 유명해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작자로 소설가 지망생인 아내의 내연남이다. 아내가 그 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조롱까지 당하자 벤 브래드포드는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된다.

이후 그는 친구에게 요트를 빌린 후 요트에 불을 질러 게리 서머스의 시신을 처리한 후 자신을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게리 서머스의 이름과 삶을 훔쳐 살아가게 된다. 외지에 있는 마을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실컷 찍으며 그는 우연한 계기로 유명한 사진 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새로운 연인도 생긴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살던 마을에 아내가 찾아온다. 게리 서머스를 만나려고 온 것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다시 새로운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의 인생을 훔쳐 새로 사귀게 된 연인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스토리다. 대신 전처럼 사진작가로 살 수는 없었다. 그는 숨어서 죽은듯이 지내게 된다.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 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119쪽) 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그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더라면 그의 가정은 붕괴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또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속인 채 '성공한 변호사'의 옷을 입고 살아간다. 그것을 벗게 되는 것은 '우발적 살인'이었다. 스스로를 죽이고, 남자는 그 가짜의 삶에서 벗어나지만 또다른 가짜의 삶을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소설 말미에서 깨닫게 된다. 남을 속이는 것만큼이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이 소설은 '벤 브래드포드'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내가 이룬 세상을 스스로 경멸한 자기혐오도 죄악이었다. 생의 마지막 한두 시간을 남기고, 나는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와 마주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어제의 삶을 이제는 간절히 바라는 입장이 됐다. 종교라도 있었다면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했을 것이다. (159쪽) 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누군가는 그의 삶을 부러워했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빈 껍질 뿐이었던 삶을 버린 채 또다른 삶을 선택하지만 그것 역시 알맹이 없는 삶이었다. 게리 서머스는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반대로 벤 브래드포드는 그 무명의 예술가의 삶을 부러워했다.

열등감은 스스로를 죽이고, 타인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고 그것을 훔치게 하지만 그는 결국 훔치기만 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조금만 솔직했다면 그는 변호사라는 옷을 벗고 사진작가의 옷을 입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게리 서머스를 유명해지게 만든 것은 벤 브래드포드 자신이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망설인다.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가던 그에게 그 일상을 깨뜨리게 만든 것은 그도 예상치 못했던 살인이었다.

변화를 모색할때 - 그로 인해 잃게 될지도 모르는 안정된 일상을 생각할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그 역시 느낀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됐는데, 그는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었다. 그는 익명의 삶을 선택함으로 인해 덫에 걸리게 되고, 또다른 삶 안에 갇힌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영화로도 나왔다.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