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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05. 2021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흐를 때

은모든 작가의 소설은 릿터에서 ‘501호의 좀비’로 처음 접했다. 그 소설을 읽고 이 책도 구입하게 되었다. 은모든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501호의 좀비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좀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연상하게 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되지 않는 친족 성범죄자에 대한 단죄를 실행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소설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쉼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는 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흡사 잔칫집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연출해내는 한 가족과 그 가족이 모여 프라이팬에 부쳐내는 동그랑땡이 빚어내는 예상치 못한 사건과 결말은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어떤 통쾌함마저 선사한다.

음식에 관한 묘사가 디테일하게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은모든의 소설에서 그런 것을 느꼈고, 그래서 이 장편소설집에도 그런 식사 장면에 관한 묘사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대감에 부풀어 선택했던 것 같다.

먹방 영상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면 나처럼 독서를 하며  책 속의  식사 장면에 관한 묘사를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외 교사인 경진이다. 이야기는 경진이 얻게 된 사흘의 휴가와 경진이 가르치고 있는 갑자기 사라진 아이와 그 아이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경진의 마음을 따라간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사라지기 직전 경진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았으나 경진은 아이에게 구태여 이를 묻지 않고 아이를 집으로 돌려 보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아이의 부모에게 받게 된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그것이 아이가 사라진 일과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 짐작하는 경진은 내심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린다.

그 이후부터 경진에게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경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진은 자신의 주변 사람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조금씩이나마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

이 소설에는 식사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늘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식사 장면이 이토록 이 소설에 여러번 등장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그건 바로 이야기는 테이블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너와 내가 마주 앉아 나누는 음식과 이야기. 따뜻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서 펼쳐지고 정리 되며 매번 새로운 식탁이 차려지는 것처럼 이야기의 식탁도 매번 새롭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말과 글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나를 연결해주기도 하는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특히 대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연결되며 또 그 대화의 내용에 따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며 사람 사이에 관계의 균열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누군가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얻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내밀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이해 받고 싶은 순간이, 아니 털어놓기만이라도 하고 싶은 순간이 살아가다 보면 만나지게 될 때가 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런 시간을 내고 싶어도 내어줄 수 없거나 또는 내어주는 상대를 만나지 못해 마음 속에 묻어만 두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오래전 만났던 중년의 한 여성에게서 느꼈던 적이 있다.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던 사람일수록 누군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잘 헤쳐나온 자신의 시간에 대해 알아봐주기를 원한다는 것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소통의 부재와 단절의 시간이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며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요즘이라 그런지 이 소설을 읽는 시간 내내 소통의 중요함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던 거 같다.

이 책을 읽어 나갔던 시간은  테이블 위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맛있게 음미했던 시간이었다.




햇살이 드리운 거리를 느긋하게 걷고
얼굴을 마주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2020년 5월
은모든 (171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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