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문학 평론가인 저자가 신문에 실렸던 자신의 칼럼을 엮어 낸 책이다. 주로 2000년대 초엽에 신문에 실렸던 글들이 담겨 있다.
밤은 사색하는 시간이다. 분주히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잠시 멈추는 시간. 한낮의 열기와 소란이 고요함 속에 깃드는 시간.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한 구절에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낮에 잃은 것들은 무엇이고 밤에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요함 가운데 깊은 밤, 사색하는 시간 속에서 되찾아야 할 것은 그날 일을 되돌아 보며 얻게 되는 삶에 대한 성찰이나 자기 반성일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숙제로 나온 일기 쓰기를 하며 곧잘 그러했듯이.
밤의 시간에 기록되어야 할 이야기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책이었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그래서 영화의 끝에서 전직 형사 박두만이 우리를 똑바로 쳐다볼 때, 그 시선은 이런 질문을 쏘아 보낸다.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2003)
윤리는 기억이다_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