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우리의 조각들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의 부재를 일찍부터 경험한 내게 어머니의 세계는 익숙한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는 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심시선으로부터 시작되어 끝을 향해 가는 이야기. ‘시선으로부터,’는 제사에 대한 심시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시선으로부터, 9쪽)라는 심시선의 이야기는 평소 나의 제사에 관한 생각과 같아서 공감이 갔다.
사후에 자신의 제사를 지내기를 원치 않았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잠시 났다. 생전에 제사를 지내기를 원치 않았던 심시선의 뜻을 받아들여 가족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십년이 되는 해에 특별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심시선이 젊은 날을 보냈던 하와이에서 그녀를 추억하며 여행에서 얻은 특별한 물건을 찾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따위는 접어둔 그 무엇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리며 추억하는 시간과 마음을 담은 제사였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방식은 각자 다를 것이다. 제사 역시 누군가를 추억하는 방식이지만 요즘의 제사는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에 너무 치우치면 본질을 볼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제사의 본질은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일일 것이다.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간소하게 차리기도 하고 생전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상에 올리기도 한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런 형식을 빌려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살면서 떠난 이를 내내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떠났어도 영영 떠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제사가 이런 모양을 띠고 있으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기는 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에 한하지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나눈 대화 속에서, 또 그 시간 속에서 물려받는 정신적인 유산이 있다.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에게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들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쪽), 시선으로부터_정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