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호루라기

아이의 호루라기

by 기록 생활자

어딘가에서 아이가 “엄마”하고 부를 때 먼 곳에서 그 소리가 들려도 내 아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발걸음을 돌려 보면 언제나 어김없이 나의 아이가 있었다. 여럿 가운데 섞여 있어도 뒤통수만 보아도 내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셸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에는 “어머니는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오래전에 읽은 이 소설의 한 문장이 아이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순간마다 떠오르며 체감이 되곤 했다.


아이도 그것이 신기했나 보다. 멀리서도 자신이 부르면 어디든 나타나는 엄마가.


아이는 어느날 왜 그렇게 엄마를 불렀어?라고 묻는 나의 말에 “호루라기를 분 거야”라고 말했다. 부르면 어디든 나타나는 엄마가 신기해서 호루라기를 분 거라고.


아이에게 엄마를 부르는 순간은 아이의 상상 속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되었던 모양이다.


호루라기는 누군가에게 “내가 여기 있어요”라고 알릴 때 사용된다. 도움의 손길을 다급하게 내밀 때에도.


호루라기를 분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여기 있음을 소리로 드러내는 일. 아이들에게 부모는 아이의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무엇일 것이다.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호루라기가 되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위급한 순간에 언제든 꺼내 불 수 있는 작은 호루라기.


언젠가는 아이가 엄마라는 호루라기를 불지 않게 되는 날도 있겠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누군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아이에게 호루라기가 되어주는 날도 올 수 있겠지. 그때까지 아이의 호루라기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그 공간 속에서 사는 법과 죽는 법을 배운다. 그들의 정신이 지어내는 공간 속에서 분리와 거리와 고통이 생겨난다. 하지만 더 설명할 필요 없이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연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랑은 존재들을 결합시킨다.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한다. - 소립자 中, 미셸 우엘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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