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기범 Aug 14. 2019

[D+78] 아빠 단독 10시간 육아 후기

아기도 울고 나도 울고 눈물 젖은 바나나도 울고


솔직히 말하면,

아빠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작은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쓰레기통이 이렇게 꽉 찼는데
왜 비우질 않았지?
시간 날 때 아기 빨래를
한 번만 돌리면 좋았을 텐데….


혼자 집에서 아기를 돌보느라

여유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택도 없는 소리였다는 것을

아빠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주말 10시간 단독 육아를 한지 

8시간 만의 일이다.



토요일, 

엄마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오후 2시에 외출을 했다. 

아빠는 "걱정 말라"며 아내를 보냈다.

혼자 남았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기는 분유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그러나 오후 6시가 넘어가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칭얼대기 시작했다.


칭얼대다, 잠시 쉬었다, 

칭얼대다, 잠시 쉬었다, 

울부짖다가, 잠시 쉬었다,

무한 반복.


배가 고픈가? 해서 

수유 텀보다 30분 빨리 분유를 물렸지만

40ml만 먹고 젖병 꼭지를

퉤 뱉었다.

도로 물려보았지만

또다시 칭얼대기 시작.


아빠는 슬슬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저녁은 두유 하나, 바나나 하나, 약과 하나.

아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5분 만에 먹었다.


여기까진 그나마 참을만했다.

문제는 오후 8시부터였다.

잠깐 잠을 자는가 했더니

이내 깨어나 칭얼 칭얼 칭얼 칭얼….


안고 온 집안을 돌아다녀야 조용해졌다.

잠이 든 듯해 내려놓으면 1분 만에

잠을 깨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낮에는 그렇게 열심히 보던

모빌도 본체만체.

바운서에 뉘여도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결국 아빠는

2시간 동안 아기를 들고 온 집을 걷고,

소파에 아기를 안고 앉아있어야 했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역류방지 쿠션에 놓으려

아기를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했더니

허리가 뻐근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기가 또 칭얼댔다.

내려놓은 지 1분 만에.


아빠는 가슴속에서 '욱'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기를 향해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라고

쏘아붙이고야 말았다.


아기가 흠칫하는 표정을 짓자

아빠는 그제야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미안함과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뒤얽혔다.


서러운 초등학교 남자애처럼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내는 이런 일상을

하루에 10시간씩 

매일 보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니 그랬다.

'아내가 힘들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하루 종일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쓰레기통을 비울 시간이 없었는지,

왜 밥도 안 챙겨 먹고 있는지,

왜 퇴근한 나를 보고도 웃지 않는지

말이다.


짧은 10시간의 홀로 육아였지만

진짜 부부 공동육아를 실천하기 위한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부부 공동육아의 첫걸음은

어쩌면 대부분의 팀워크 활동의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로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가슴 깊이 공감하는 것.



*오늘의 육아템

흑백모빌

바운서

눈물 젖은 바나나


작가의 이전글 [D+74] 타이밍의 예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