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아기와 장거리 여행 다녀오기
지속훈련, 이라는 게 있다. 운동을 시작한 뒤 종료할 때까지 쉼 없이 실시하는 신체 훈련을 말한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폐지구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다. 군대에 있을 때는 '야간지속훈련'이라는 것도 해봤다. 24시간 동안 깨어 있으면서 전시에 대비하는 훈련.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도 있다. 어떤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쓸 데 없는 용어를 남발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들에게 전한다. 아직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6개월 아기와의 장거리 여행은 당신의 '양육지속성'을 길러주는 아주 훌륭한 훈련장이다. 물론 양육지속성이란 내가 마음대로 만든 말로, '장시간 외출했을 때도 아기가 집에 있을 때와 거의 동일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기가 필요한 것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지만, 훈련은 훈련이니만큼 육체적 정신적 소모(...)가 찾아온다.
아빠들이여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훈련에 앞서 무엇을 준비하는가. 배낭이다. 역시 양육지속성 훈련에도 배낭이 필요하다. 물론 엄마 아빠에게는 배낭보다 더 훌륭한 도구가 있다. 바로 캐리어와 유모차다. 물론 평소 외출할 때 가지고 다녔던 외출 가방을 챙기는 게 기본이다.
장거리 출장을 떠날 때처럼 가만히 앉아 생각해본다.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것은 외출 가방에 있지만 수량이 부족한 것을 보완한다. 기저귀나 가제손수건, 분유, 끓인 물, 이유식용 숟가락 등등.. 분유는 통을 들고 가는 대신 밖에서도 먹이기 편하게 각각 분유 저장팩에 나눠 담았다.
기저귀는 밤 기저귀를 빼고는 가볍고 작은(평소에는 잘 안 쓰는) 킨도 제품으로 챙기고, 설거지도 최소화하기 위해 젖병은 두 개만, 나머지는 모두 일회용 젖병 팩으로 챙겼다. 사실 완전 일회용 젖병을 샀는데, 젖꼭지가 너무 말랑해서 아기가 잘 먹질 못했다.
여기에 외출 가방에는 없는 물건을 챙긴다. 저녁부터 아기가 잠들 때까지 무엇을 하는가 생각해보면 된다. 젖꼭지를 씻기 위한 젖병솔과 작은 세제 팩을 챙기고, 목욕시킬 물건과 여분의 장난감과 앉아 있을 의자와.. 다행히 물을 끓일 포트와 이불 담요 등등은 처가에서 조달해오셨다만, 그렇지 않다면 아기가 잘 이불도 챙겨야겠지.
여기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해열제 등 비상약도 챙긴다. 자 아직 늦지 않았다 어서 티켓을 취소해라
필수적인 짐을 다 챙겼다면 이번에는 지도가 필요하다. 야전이라면 종이지도가 필요하겠지만 엄빠에게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 이동경로와 시간 등을 고려해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서 운이 좋았다. 거의 모든 휴게소에 수유실이 마련돼 있었고 시설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 슬프게도 젖병 세제나 포트는 없었지만 전자레인지와 싱크대, 젖병소독기 정도는 마련돼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도 깨끗한 편.
시간이 넉넉하다면 젖꼭지를 씻어 소독해 두고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 정수기도 있기 때문에 끓인 물을 뗀 경우라면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푸드코트에 아기 의자도 대부분 잘 갖춰져 있었다.
숙소도 미리 체크해두면 좋다. 우리가 머문 곳에는 이유식 전용 전자레인지와 수유실이 구비돼 있었는데, 수유실은 너무 멀어 이용하지 않았고, 이유식 전용 전자레인지는 코앞에 있었는데 있는지를 몰랐다(...) 어쨌든 2박 이상을 해야 한다면 숙소의 수유실 시설을 이용해야 하므로 필수로 체크할 것. 블로그 후기가 미친 듯이 많기 때문에 금세 찾을 수 있다.
엄빠들이 여행 때 가장 걱정하는 건 사실 짐이 아니라, 아기의 상태. 혹시나 카시트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울어버리진 않을까.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잠자리를 가리느라 새벽 내내 울진 않을까. 공공장소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 특히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정말 걱정 한 가득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아기는 카시트에도 잘 앉아 있고, 새로운 환경이 닥쳐오더라도 울기보다는 한 번 구경해보는 스타일. 그렇다고 신이 나면 소리를 꽥꽥 지르는 타입도 아니라 가끔은 있었는지 조차 까먹을 정도였다.
심지어 집에서보다 잠을 더 푹 잤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엄마가 꾸벅꾸벅 조는데 정작 아기는 멀뚱멀뚱 엄마를 쳐다보고 있더라. 기특하기도 했지만, 혹시 불편한 게 있는데도 표현을 하지 않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그래도 조금 자신감이 붙은 엄빠, 곧 뚜벅뚜벅 걸어서 KTX도 타고, 여권 내고 비행기를 타는 날도 오겠지. 항상 더 재미있고 좋은 곳에 데려가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