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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Jan 06. 2020

[D+216]'인지'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하오 낯선이여

공포의 6개월 차 원더윅스, 다이나믹 베이비

딸아, 너도 사람이 되고 있구나!


6, 7개월에 들어선 아기의 모습을 보며 느낀다. 아, 이 아기도 사람이었구나. 그렇다고 이전에는 사람 취급 안 했다는 말은 아닌데, 뭐랄까 이전에 비해 훨씬 어렵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됐다는 말.


내 생각에 사람이란 존재는 A를 투입해서 B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알 수 없는 기계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고, 변수가 많다. 예를 들어 친구가 기분이 좋은 날에는 시비를 걸어도 농담이 돌아오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칭찬을 해도 욕을 먹게 된다. 어떤 날은 뱃속에 거지가 들은 것처럼 밥을 잘 먹다가도 기분이 안 좋거나 속이 좋지 않은 날이면 밥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인지'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그런데 6개월 이전의 아기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심지어 자기 몸의 불편함마저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니까. 호불호가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아이를 처음 집에 데려온 부모는 무섭고 불안하다. 혹시 아기가 모르는 불편함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여섯 달 정도가 지나면서 아이를 기르는 게 익숙해진다. 아기가 반응하지 않거나 이유 없이 울기만 해도 적절히 상황을 판단해서 필요하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병원에 데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아기의 감정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아기가 웃기(Good) 울기(Bad)라는 이분법적 표현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위 모습처럼. 이유식이 먹기 싫은데 반강제로 입을 벌리고 숟가락을 들이밀자 울상인 표정을 짓는 것이다. 아빠와 시선을 피하고 엄마를 쳐다보며 애절한 눈빛 발사. 


목소리로도 감정을 전달한다. 추측컨대 '이이이이-' 하면서 끝을 길고 높게 빼면 'I want'라는 뜻이다. 뭔가를 달라고 하거나, 불편하다거나 아무튼 뭔가 해달라는 뜻이다. '꺄아!'는 신기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손을 뻗는 동작도 자주 보인다. 이건 당연히 '줘'라는 뜻.


'까꿍 놀이'를 했을 때 재미있어하는 아기의 모습도 이때쯤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아기가 '인지'의 세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근거 중 하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없어졌던 것이 다시 나타나니 기뻐한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수건 뒤에 엄마의 얼굴이 숨어 있다고 예상하는데 정말 엄마가 나타나자 기뻐한다'고도 설명한다. 


이는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중 1단계 격인 '감각 운동기'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대상 영속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이 눈 앞에서 사라지더라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아, 아기가 바야흐로 인지의 세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마냥 행복하다고는

안 했습니다(...)


이게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인지와 자아의 세계의 입구에 발을 들이민 아기는 모든 게 혼란스러워 보였다. 


쉽게 말하면 분유든 이유식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던 아기가 인상을 쓰거나 입을 꼭 닫고 표정을 찌푸리곤 한다. 냠냠 귀엽게 받아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전에 먹던 것의 절반도 먹지 않고 발버둥 치는 모습에 엄마도 지치고 아기도 지치고 눈치 보던 아빠도 지치고.. 눕히면 일으켜라 일으키면 앉혀라 뺏어가면 도로 가져와라, 그야말로 난리다.


그래도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기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알기 때문에 짠한 마음도 든다. 생각해보라, 태어나면서 처음 '애정'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이게 첫사랑이라는 건가? 왜 심장이 이러지? 왜 쟤를 보면 막 짜증을 내고 도망치게 되는 거지? 왜 얼굴이 자꾸 빨개지지?' 지나고 나면 그게 호감이었구나, 알게 되지만 그때는 그게 뭔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기는 아마 그런 혼란을 매일처럼 겪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사람이 되어가는 너를 보며 더 열 받는 즐거운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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