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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Jan 21. 2020

[D+228] 7개월 아기, 밤잠이란 무엇인가

왜 매일 밤 너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


버팀목인가, 위안물인가?


이는 얼마나 진지하고 깊은 화두인가. 여기에서 버팀목은 나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을 말한다. 어른을 기준으로 한다면 돈, 직장, 술 같은 것을 말한다. 위안물은 있으면 좋은 것, 없으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물이나 존재가 나에게 버팀목인지 위안물인지를 고민해보는 일은 퍽 철학적이다. 가족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돈은? 명예과 체면은? 이런 중대하고 어려운 화두가 무려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에게도 있다.



쪽쪽이란 무엇인가


쪽쪽이(공갈젖꼭지). 물리자니 걱정되고 안 물리자니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것. 우리는 한 달에 며칠 씩 쪽쪽이를 물려야 하나 안 물리고 재워야 하나 고민 고민의 밤을 보냈다. 쪽쪽이를 안 물리고 며칠간 사투를 벌인 엄마가 ‘쪽쪽이 없는 밤잠’이라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었다. 그래 봐야 보름도 가지 않아 다시 쪽쪽이를 찾았지만.


그런데, 아기의 밤잠으로 고민해본 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다는 베이비 위스퍼의 저자 트레이시 호그는 이미 명쾌하게 답을 내리고 계셨다. ‘누가 도와줘야 한다면 버팀목,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면 위안물’이라고 했다. 위안물이라면 굳이 쪽쪽이를 물리지 않고 재우려고 각고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기가 생후 7개월이 되니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게 실감이 난다. 6개월까지만 해도 쪽쪽이가 입에서 빠지면 자지러졌던 아기가 이제는 끙끙대며 손으로 쪽쪽이를 잡아 입에 구겨 넣고는 다시 잠들기 시작했기 때문. (물론 세 번에 한 번은 구겨 넣는데 실패해서 자지러진다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빠 엄마 아기가 모두 행복한 10시간 밤잠 시대를 열었답니다 (^^)/


...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고 보니 쪽쪽이는 그냥 지나가는 무엇에 불과했다. 진짜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엄마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분, 리, 불, 안.


우리 아기는 아직 분리불안이 심하진 않은 편. 그러나 어두운 곳, 밤잠이라는 공포 요소가 도사리는 침실에서는 다르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찡찡대거나 울음이 터진다. 가끔은 아빠가 다가가도 전혀 달랠 수가 없다. 엄마도, 아빠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엄마의 존재 외에는 대안이 없다니, 이건 웬만한 팬심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 것이다.


7개월의 새벽은 이렇다. 아기가 깬다. 인기척을 살핀다. 엄마가 없다. 운다. 엄마가 안 깬다. 급한 대로 아빠가 달래 본다. 계속 운다. 엄마가 깼다. 아빠를 밀쳐내고 아기를 달랜다. 잠이 든다. 딱딱한 범퍼침대에서 엄마가 같이 잔다. 아침에 일어나니 잠을 잔 건지 멍석말이를 당한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엄마는 삭신이 쑤신다. 아빠에게 짜증을 낸다. 아빠도 도움이 못 되니 짜증이 난다. 몸도 마음도 지친 부부가 다툰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결국 지구 멸망.


이러다가는 정말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해결책은? 제일 좋은 건 또 수면교육을 하는 것이겠지만, 굳이 아기를 공포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결국 아빠가 밤잠 도우미가 될 수 있도록 아기와 친밀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영도 아래 아빠가 몇 번 낮잠을 재웠다. 아침 출근 전에 아기가 깨면 꼭 인사를 해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행히 지금은 아빠가 달래줘도 잘 잔다. (물론 밤잠을 재울 때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



잠이란 무엇인가


아기에게 밤잠이란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잠드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기쁠 리 없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밤 11시)도 아기는 뒤척이며 끙끙댄다. 오늘도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딱딱한 매트 위에서 잠들어야 하겠지.


그렇지만 절대 아기를 미워하거나 짜증 내지 말자. 생각해보면 우리도 초등학생 때까지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자는 걸 무서워했다. 악몽을 꿔서 당장이라도 엄마 아빠가 계신 방으로 뛰어가고 싶었던 그 기억을 떠올려 보자. 옷걸이에 걸린 옷을 귀신으로 착각해서 눈도 못 뜨고 벌벌 떨었던 철없는 나를 기억해보자.


6,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는 어련할까. 절대 화를 내거나 아기를 미워하지 말자. 몸이 좀 피곤하면 대안을 찾자. 아기의 밤잠 설침을 ‘바뀔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받아들이고, 아기를 달래줄 수 있는 프로세스를 단순화, 효율화하는 방법을 찾자. 그게 ‘으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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