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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04. 2020

[아빠매뉴얼#2] 오늘도 육아 때문에 다투셨다고요?

투잡에 지친 초보 아빠들에게 바치는 글

롯데월드타워 아쿠아리움에서
싸우지도 않고 정말 아기를 잘 키우고 있나 보네? 좋은 아빠네!


브런치를 지켜봐 주시는 회사 동료들이나 지인들이 한 번쯤은 꼭 하는 말입니다. 뒤에 ‘좋은 아빠’는 그냥 듣는 사람 기분 좋으라고 해주시는 덕담이겠고요. 문제는 앞 문장인데요. 아무래도 브런치에 매일 사랑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아니면 깨달음을 얻었다는 글만 올라오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겁나 싸웁니다. 이런저런 일로 투닥거리는 날이 많습니다. 섭섭함과 울적함에 눈물을 보이거나, 빈정이 상해서 하루 종일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는 냉전의 날도 있죠.


그래도 다행인 건,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한다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폭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성품 때문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화가 잘 나는(화를 잘 내진 않지만 화가 잘 나기는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불필요한 오해나 감정 상하는 일이 없도록 생각을 매번 다잡는 일이 필요했었습니다. 다행히 스스로 잘 설득이 돼 효과가 있었네요.


어렵지 않았습니다. 딱 한 문단 정도 되는 글을 머릿속에 잘 넣어두는 것인데요. 공감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두근대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하는 초보 아빠(혹은 엄마도?!)에게 한 줄기 도움이 될까 해 적어봅니다.



직장인으로, 초보 아빠로 투잡 뛰는

아빠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자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스트레스와 고통, 우울에 대한 위로와 공감의 글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빠를 위한 글은 별로 없더군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뭘 위로까지’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남자들의 생각 이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빠들이 위로까지 필요할 정도로 힘들지 않잖아?’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육아에 열중하는 아빠들을 대표해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 정말 엄청 힘듭니다.


육아에 열중하는 아빠들의 스트레스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투잡’의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이 퇴근의 길이 아니라 제2의 출근길이라는 거죠. 집에 들어가자마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기와 놀아주고 목욕도 시키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밤 10시, 11시는 기본입니다. 혹시 밤에 잘 깨는 아기를 키우고 계시다면, 새벽에 일어나 아기 옆을 지키기도 해야죠.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면 보통 부인이 다가와 고생했다며 엉덩이를 토닥여주기 마련이지만, 방전 상태인 건 엄마도 마찬가지.


가끔 피치 못할 저녁 일정이 생기는 날은 어떤가요? 내 의지로 야근을 하는 것도, 저녁 미팅에 가는 것도 아닌데 잔뜩 예민해진 부인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나도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매일을 죄인처럼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배 아빠들은 말합니다. “참아라.” 화를 내는 것이 참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더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입니다. 당연합니다. 서로 예민한 상황에서 한쪽이 불쑥 화를 냈다가는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세요

다툼이 줄어들걸요


그 전에 전제 하나.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육아는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힘듭니다. 24시간 아기와 함께 하는 일정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엄마 대신 주말에 아기를 돌봐 본 아빠들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생각도 들죠. 아빠는 안 힘든가요? 무조건 화를 참아야 하는 걸까요? 부인이 나보다 힘든데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몰염치한 나쁜 행동’인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스트레스에 화가 나는데 어쩌나요. 정혜신 박사도 항상 강조하듯이 ‘모든 감정은 옳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에 지친 부부가 다툴 때면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말입니다. 바로 ‘네가 더 힘드냐, 내가 더 힘드냐’의 대결. 엄마는 24시간 육아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아빠는 투잡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싸움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존 스튜어트 밀도 아니고 공리주의적으로 누구의 고통이 더 큰지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육아와 관련해서 다툼이 있을 때는 절대 ‘내가 더 힘드냐 네가 더 힘드냐’의 논리가 등장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도 나지 않는 감정싸움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실제로 딱 부러지는 결론도 없고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고요? 여기서 바로 서두에 말했던 마법의 사고법이 등장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부부를 ‘40kg의 군장을 짊어지고 끝도 없는 행군에 나선 군인’에 대입해 생각하는 겁니다.


자, 두 군인이 길을 걷습니다. 둘 다 무진장 힘들 겁니다. 야간행군을 하는 날도 많고, 밥도 제 때 먹지 못하고요. 어느 날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다툼을 뒤에서 들어보니 기가 찹니다. 들어보니 “내 짐이 더 무겁다” “아니다 내 짐이 더 무겁다”면서 싸우고 있었거든요. 이상하죠? 두 사람 다 힘든 건 매한가지일 텐데, 대체 네가 힘드네 내가 힘드네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두 사람은 그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에 오른 동료일 뿐인데 말이죠.


육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부는 그냥 처음 겪어보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두 사람일 뿐입니다. 누구의 짐이 더 무겁고, 가볍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둘 다 힘든 겁니다. 화가 나서 상대방의 짐 보다 내 것이 무겁다고 화를 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한강에서 빰 맞고 종로에서 화내는 격입니다. 그냥 힘들어서 화가 난 것일 뿐입니다.


어차피 끝도 없는 길, 옆의 사람이 다리를 절고 있다면 그 사람의 배낭에서 전투화라도 하나 빼서 잠깐 들어주세요. 그러면 내가 힘들 때 그 사람도 내 짐을 들어주겠죠. 어차피 둘 다 무거운 짐 지고 가는 끝없는 길. 그렇게 서로 위로하면서 가는 겁니다. 위로하면서 가도 힘들어요. 쓸데없니 짐 무게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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