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는 위축이 아니라 진화입니다

상법 개정안으로 읽는 기업 내부통제의 의미

by 회사원 나부랭이

경영자만의 회사는 없습니다


최근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의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독립이사제 구성 권고,

겉으로 보면 경영진에게 부담을 주는 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중요한 건 경영자의 판단보다 권한이 작동하는 방식, 즉 구조의 설계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기업 권력의 배분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감시받을수록 정교해지는 조직


이 변화의 바탕에는 경영학에서 오래도록 중심을 이뤄온 에이전시 이론(Agency Theory)이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와 경영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자가 자신의 권한 유지를 우선하거나, 단기 실적에만 몰두할 수 있죠.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감시와 견제 장치입니다.
이번 개정안의 3% 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이사회가 단순히 승인 기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기구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한 구조적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누구의 이익을 위한 구조인가요?


기업은 더 이상 주주만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이해관계자 이론(Stakeholder Theory)에 따르면,

기업은 직원, 고객, 협력사, 지역사회, 나아가 환경까지 고려해야 지속가능합니다.

이번 개정안은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제한하고,

그동안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법률 조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의사결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3. 경영자는 위축될까요?


물론 이런 제도적 변화가 경영자의 판단과 결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학의 또 다른 중요한 시각인 자원기반이론(Resource-Based View)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
예를 들어 신뢰, 투명성, 조직문화 같은 요소에서 찾습니다.


감시받고 설명해야 하는 경영은 단기적으로는 답답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와 평판이라는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입니다.


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감사기구와 투명한 지배구조는 기업의 장기 가치를 높인다.”

즉, 감시가 불편하더라도 결국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투자 매력을 키우는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4. 회사원인 저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쯤 되면, ‘이런 제도가 내 일과 어떤 관련이 있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위원, 독립이사, 의결권 같은 단어는 왠지 멀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 구조가 작동하는 조직은
정확하고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내가 쓴 회의록이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고,

불합리한 업무 지시는 감사 시스템에 의해 걸러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일한 만큼의 책임과 보상이 구조적으로 연결되기 쉬워집니다.

결국 상법 개정안은, 우리 같은 회사원에게
'내가 왜 이렇게 일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감시 없는 신뢰는 없습니다


견제는 때로 불신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도화될 때,
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 가까워집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누구의 권력을 어떻게 나누고,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기업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도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나는 설명 가능한 구조 안에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권한 아래에서만 움직이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조직원이 아니라,
조직의 신뢰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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