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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Nov 20. 2024

배은망덕한 김교사

"너 딱 찍혔어!"

 


    

첫 발령을 받자마자 나는 딱 찍혔다.

이유는 이렇다.


옆 반인 원로교사님에게 아침이면 커피 배달을 하고, 교실 환경도 내 몫이며 교사님이 안전한 퇴직에 이르도록 두루 살펴드리는 것이 신규교사인 나에게 추가로 부여된 업무였다.

알만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싹수없다는 오해는 금물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몸과 마음에 예를 갖춘 인물로 어른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는 막내 캐릭터이다. 그런 내가 도대체 왜 그랬냐고? 사실 나는 고운 인성 뒤에 '마음에 없는 행동은 1도 못하는' 유전적인 병을 감추고 사는 인간이었다. 유전병인 게 확실한 요놈의 성질머리에 딱 걸려든 것이다. 수업은커녕 두 다리에 안마기를 끼고 드라마 재방을 보고 있는 원로교사님의 모습(참고로 24년 전이다).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 눈치를 보며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있는 모습이 기가 차고 코가 막혔다.

특수교사가 된 첫해에 나는 일반교사들이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을 따거나 퇴직을 앞둔 교사가 교직의 마지막을 편히 보내는 곳으로 특수학급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방치하던 교사의 모습에 존경심은커녕 화가 단단히 난 나는 커피는 내 커피만, 교실 환경도 내 교실만, 불신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인사하기 등, 소심한 투쟁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부장님들은 나를 아주 괘씸하고 싸가지없는 교사로 여겼고, 나는 눈으로 하는 욕을 일년내 견뎌내야 했다. 근데 말이다. 내가 옆반샘을 미워하는 데 시간을 쓰는 동안 옆반 아이들의 1년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나는 소심한 투쟁이 아니라 조금 더 배은망덕한 교사가 되어야 했다.

“선생님! 티비 끄시죠!”      




시간은 흘러 나는 두 번째 학교로 인사이동을 했다.

역시나 이 학교에서도 가자마자 딱 찍혔다. 이번 이유는 진짜 단순했다. 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본격적으로 전교조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조합원 줄이기 대작전이 시작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길고 치밀한 계획이었다. 당시 학교별로 조합원 수가 집계되어 교장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조합원이 한 명도 없는 학교의 장은 이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던 때이다. 그러니 작은 학교에 발령받은 전교조 조합원 교사가 반가울 리가 없다.


“나는 김선생이 내 등에 칼 꽂을까 봐 무서워.”

교장이 히히덕 웃는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할 때 진짜 뭐라도 꽂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담임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받으면 안 되는 일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나는 나의 설정값을 살짝 바꿔보기로 한다.


“네, 알겠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웃는 얼굴로 수없이 연습한다. ‘아니요.’를 입과 얼굴에 달고 살던 내가 ‘예’로 설정값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 연습의 효과는 매우 좋았다. 누가 어깨만 쳐도 “네! 알겠습니다.”가 자동 재생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제 교장은 말한다. “더 무서워.”


어쩌라고? 근데, 변화가 왔다. 웃으며 넘기니 다음번에는 웃으며 부탁을 하게 되고, 요령이 늘어 안 해도 되는 공문을 올려 슬쩍 포기하는 척하니 그게 눈치가 보여서인지 다음 공문은 순조롭게 결재해 주는 게 아닌가? 그 맛에 빠져 나는 지금까지 ‘예’ 설정값으로 살고 있다.

이후에 학교를 옮겨서도 몇 년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결재가 안 나는 일이 왕왕 생기면서 나름의 생존 전략들은 다양하게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교직원총연합회(교총) 회원인 동생을 교장실에 대동하여 결재를 받아내는 게 가장 쉽고 빨랐다.




근데 요즘은 말이다. 이 설정값을 장착한 그때가 조금은 후회된다.

목적을 위해 온화한 수단을 쓰다가 보니, 나는 그냥 사람 좋은 교사가 되고 말았다. 목적을 이루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이 자꾸 끼어 들어온다. 나는 1도 안 무서운 사람이 됐다.

‘아니 이 사람들이! 보자 보자 하니 보자기로 보이나? 가만가만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나?’

아주 그냥 배은망덕한 교사로 교장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려줬어야 한다.     


네 번째 학교에서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선생님 하나야! 뭐 느끼는 거 없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내성이 생겨 그런 말에 웃어넘기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교장의 등장으로 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네가 간이 제일 세다며?” 새로 부임한 여교장이 나를 보고 제일 처음 한 소리다.

특수교사로 살다가 보면, 세상 억울하고 답답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느는 것이 한숨이요 술이다. 우리가 겪는 간접 차별의 경험들. 학부모, 동료 교사의 울음을 함께 하다가 보면 술만한 위로가 없다. 우리는 너무 작고 세상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알코올 누적지수가 쌓이면서 나의 능력치도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시절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을,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기 위해 나는 ‘회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나는 나이 마흔에 간이 제일 센 교사가 되었다.


“술은 평등해야지. 교장, 교감 딱지 떼면 동석 허락합니다.”

“야!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그래, 나 이제 교장 아니야.”

“그래! 언니, 한잔해! 언니 근데 우리 애들이 말이야...”




다섯 번째 근무지에서도 나는 딱 찍혀있었다.

“부장님, 오늘 교육청 들어갔는데 부장님 얘기를 해서요. 부장님이 술만 마시면 교장, 교감에게 야자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부장님이 그런 오해받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속상해할 필요 없어요. 사실이니까요.” 후배 교사의 걱정에 내가 답한다.

그러고 혼자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나는 충분히 배은망덕한 교사가 되었다.

“어이! 이 배은망덕한 김 교사!”

평화로운 학교에 계속 갈등을 불러일으켜 변화를 만들어내는 배은망덕한 교사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설정값이 달라졌다.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공격적으로 살아도 될 듯하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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