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물어봐 주면 좋겠어
2024년 10월 24일 이후의 나는, 우리의 곁을 떠난 동료와 시간을 나누고 있다.
"이제 그만해, 그만하면 됐어."
말한다.
나의 시간이 멈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적인 모임도, 사적인 활동도 멈춘 것이 사실이다.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며 나누던 수다는 사라지고,
기자회견, 인터뷰 등의 일정, 보도자료 검토, 1인 시위, 촛불집회, 진상규명 등을 위한 회의 속에 살고 있다.
브런치 연재도 모두 멈추고, 집회 시나리오, 연대발언, 투쟁발언, 진상조사를 위한 제안서 등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어 흰머리가 정수리를 장악해 가고 있고,
늘 시간에 쫓기고, 잠은 부족한 날이 반복되면서 경미하지만 교통사고가 2건이나 있었다.
꾸밈을 위해 내어 줄 시간이 없어 세월의 흔적과 피로함에 물든 면상을 하고 다녀야 했다.
가끔 나 자신도 궁금하다.
'도라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도 그러한데,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어떨까? 49세 중년의 교사가 집회장에서 비를 맞으며 북을 치고, 집회 사회를 보며 구호를 외치고 교육청에 항의를 하고 있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결국 남의 일인데, '
가끔 그런 시선을 느낀다.
"찔러봐!"
나에게 물어봐 주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죽은 그 선생님과 2년 전쯤에 술을 한잔 같이 했어. 그날도 교육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어. 근데 술자리라는 것이 그래. 솔직해지기 좋은 자리지만, 술 때문에 긴장을 놓지 않게 되기도 하지. 그날 나는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이 어린 선생님들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 말이지. 그래서 선생님의 말에 잘 집중하지 못했어. 그리고 그 경력 때는 그러기 마련이지... 건성으로 들었던 것 같아. 이게 참, 마음의 빚이 크네.
밝고 싹싹한 선생님이었어. 처음 사망소식을 듣고는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뭐야. 믿기지가 않았어.
그때, 내가 흘려들은 그 이야기들을 되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진실을 향해 직진했어.
A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지,
'교육청 때문이야.' 그 말만 반복하며 오열했어.
학교에 출근을 했는데, 전교조 선생님이냐며 이야기하고 싶다며 A선생님의 대학동기 샘이 찾아왔어. 다른 동기샘은 지난 1년의 대화내용을 보내주었지. 처음에 그 글들을 읽는 게 힘들었어. 그 글에는 A선생님의 분노로 시작해 절망과 체념으로 마무리되더라. 눈물만 하염없이 났어.
왜 감축을 했지? 왜 정원 외 기간제 교사 배치를 안 했지? 왜 살려달라는데 아무것도 안 했을까?
지난 4년간의 학교 현황을 살폈어. 그리고 인천 전체 현황을 봤어. 같은 조건의 다른 학교는 학급이 감축되지 않았고, 또 어떤 학교는 증설이 된 경우도 있었어. 그리고 교육청에는 미배치 기간제 교원이 95명이나 남아있댔어.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다가 여기까지 왔어.
멈추기에 내가 알아버린 게 너무 많은 거야.
아는 만큼 화가 났고, 아는 만큼 슬펐어.
나도 가끔은 나에게 물어, 너 왜 이렇게까지 하니?
그냥, 교사로서 외면이 안 돼. 몰랐으면 몰라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멈춰. 이 죽음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자', 그게 누구일까? 우리 4, 50대가 아닐까?
나의 시간이 멈췄다고?
아니야. 나는 새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전에 없었던 내일을 만들 거야. 내 남은 교직생활을 걸고 말이지.
그리고, 살아있었다면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아이들 얘기, 학교 얘기도 나눴을 선생님과의 그 시간을 지금 이렇게 쓰고 있어.
물론,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어. 자주 슬프기도 하고. 내 감정이 오락가락 이리저리 헤매고 있어.
그런 나지만 그냥 내버려 두려고, 뭐든 시간이 필요하잖아.
찔러봐 줘서 고마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