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가 애주가가 되었을까?"
요즘 새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
그 친구들은 나처럼 흥도 많고, 긍정적이고 용감해.
그런 친구를 만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언니는 알고 있지?
문제는 내가 과음하는 날이 늘고 있다는 거야. 마실 때는 좋지만, 신촌에서 인천까지 대리비나 택시비를 생각하면 문제가 있지. 막차를 타겠다는 결심은 미뤄지고 미뤄지다 새벽 2시를 넘기고, 3시가 다 되어서는 그냥 ‘곧 첫차네, 그거 타야지’하는 즐거운 체념으로 바뀌어 있어. 참 곤란하지?!
이런 나에게도 처음이 있었지.
그건 고1 때 일이야. 대학생인 언니의 옷을 몰래 꺼내 입고 경희대 앞 호프집에 갔더랬지. 코앞에 있는 친구의 뒤통수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틈에 일행을 놓칠까 봐 잔뜩 겁먹었지. 그때는 실내 흡연이 가능했잖아. 담배 연기 때문에 어찌나 뿌연지, 음악 소리는 또 얼마나 커! 혼이 쏙 빠졌어. 그때 계단 난간에 기댄 나의 멍한 표정이 보이는 듯해. 우리가 술을 마셨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어. 사실 그곳은 호프집이 아니야. 우리는 술 파는 곳은 다 호프집인 줄 알아서, 그냥 호프집이라고 했던 것 같아. 그곳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분명 클럽이야. 둠치둠치~ 조금 더 즐길걸! 왜 그렇게 쫄았지, 싶어.
그렇게 첫 음주 세계를 경험하고, 고3 백일주라는 것을 마셨던 조금은 억울한 추억이 떠오른다.
눈이 쏟아질 듯 큰, 코도 크고, 얼굴도 큰, 그 친구는 굳이 집에 가겠다는 나를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다’며 꼬드겨 내더니, 모든 동선을 파악해 둔 범죄자처럼 망설임 없이 부엌으로 가 온갖 술이 있는 진열장에서 하나의 술병을 한 번에 찾아들고는 내게 말했지.
“우리 이거 마시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 그때까지도 나는 조금 소심한 아이였던 게 분명해. 눈치를 보고 있었어. 맛을 봤지. 술도 모르는 여고생이 담근 술이 맛있을 리 없잖아. 나는 한잔 마시고는 더는 마시지 않았어. 근데 그 친구는 잘 마시더라. 처음이 아닌 것 같았어. 아, 언니 오해는 마. 내가 그 친구 흉을 보는 건 아니야. 그 친구는 성실하고 소신이 확실하고, 똘망똘망한 친구였어. 본인을 쏙 닮은 오빠도 있었어. 눈이 엄청 부리부리하고 코도 크고 얼굴도 큰 오빠였어. 아무튼, 뻔하게 생각하는 데로 엄마가 갑자기 들어오셨고, 내가 순진한 딸내미 꼬드겨낸 불량 학생이 되는 데까지 몇 분 안 걸리더라. 뭐 거의 쫓겨나듯이 그 집에서 나왔고, 친구의 침묵에 어떤 것도 묻지 않았어. 나는 사과도 해명도 듣지 못했어.
그냥 이렇게 생각해 버렸던 것 같아.
‘아직은 나보다 엄마가 더 무섭구나. 그럴 수 있지.’
이 일로 나는 배웠지.
나쁜 기억만 있다면, 지금의 애주가 없겠지?!
고3 끝 무렵, ‘술이 이런 힘이 있구나!’ 깨달음을 준 사건이 생겼어.
예상치 못했던 술자리였어. 나의 절친(1)과 그 친구의 엄마(2), 그리고 나(3). 이렇게 셋이 맥주를 한잔하게 된 거야. 시작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곧 졸업을 앞둔 우리에게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으셨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어쩌면 운명이 우리 셋을 그 상 앞에 앉혔는지 모르겠어.
그날 친구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내가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어. 당시에 우리가 자주 듣던 말과는 전혀 다른. 엄마라면 특히 딸에게 절대 안 할 것 같은 말이었지. 지금도 정확하게 다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생생해.
“너희는 꼭 살아보고 결혼해.”
물론, 친구도 나도 엄마의 바람을 이행하지는 못했지. 역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거늘. 후회가 막심이다(제발 농담으로 받아주라).
이것이 나의 첫 술맛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나와 술,
그 시절의 나는 특유의 활발함 때문에 여기저기 잘도 불려 다녔어. 그때는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시는구나 싶었어(20년이 흐른 지금도 부지런히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알코올 총량은 생각보다 많은가 봐). 그 시절 정신없이 마신 술은 다음 날 속을 다 비워내야 하는 숙취로 돌아왔고, 나는 그것이 즐겁지 않았어. 그런데 왜인지 잘 마시는 여자 신입생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 뭔가 있어 보이잖아? 정말이지 그때는 소주 5병을 혼자 다 마시고도 멀쩡했다니까?! 그 술 덕분에 명성까지 얻고, 농대 96학번 녀석들이 교지 편집위원회에 술을 박스로 깔고 나랑 대적하겠다며 기다리던 그날은 내 생애 최악의 날이었지. 그날 처음으로 필름이라는 게 끊겼고, 그날 이후로 농대 애들이 나만 보면 피해 다녔지. 아우 또 열받는다. 아무튼, 그렇게 내게 술은 그냥 이기고 싶은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그날, 동아리 방에 올라가니 선배가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기 시작하는 거야. 날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였어.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선배는 항상 내 발자국 울림이 제법 커서 멀리서도 나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했었어.
“요란하게도 다니네. 이리 와 한잔하자.”
그렇게 둘이 마주 앉았고, 선배는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어.
“너는 뭐가 그리 바빠?”
“주절주절...”
“그래서 좋아?”
“주절주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야?”
“주절주절...”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
선배는 소주잔을 비우며 차분하게 나에게 질문했고, 나도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천천히 소주잔을 비우며 내 이야기를 했어. 처음이었어.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한 게. 그날 우리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술을 마셨지만, 모든 순간이 아직도 또렷해. 선배의 얼굴과 표정이 잊히지 않아. 정갈한 단발머리, 갸름한 얼굴, 소주잔을 들고 있는 희고 가느다란 손. 온화한 표정으로 내 입에 집중하던 초롱초롱한 눈빛. 소주병이 쌓이면서 우리 사이에도 무언가가 쌓이는 게 느껴졌지. 선배에 대해서 몰랐던 것들을 알았고, 놀랍게도 내가 몰랐던 나와도 대면하게 되었어.
어쩌면 나는 그때의 그 기분을 쫓아 지금도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안주는 부실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마신 술.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술맛이야.
내 기억 속 술맛을 떠올려보니, 술을 통해 타인과 계속 만나고 있었네 싶어.
아직은 술 끊을 생각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봐야겠어. 사람에게 가는 길이라면, 술 말고도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글쓰기 같은 것도 되겠지.
그래도 혹시 말이야. 내가 나에게든, 남에게든, 가는 길을 잃는다면, 그런 순간에 같이 한잔하자. 아직은 술도 사람도 좋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금주와 절주를 오가는 애주가로 살 것 같아.
좋다. 이렇게 내 술 얘기를 언니에게 해서. 우리 다음 달에 만나면, 군만두에 연태고량주 한잔하자!
그날은 언니 얘기를 들어줄게. 어떤 얘기든 다 해. 우리 뭐든 미루지 말고 말하자. 너무 늦지 않게.
2024년 10월 28일 언니의 사랑하는 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