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한 증인이다."
#나
어린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인간이었다.
나는 말만큼이나 생각도 많았는데, 내 꿈을 기획 연출하는 지경까지 갔다. 잠들기 전에 어떤 생각에 몰입하면 그 생각이 꿈에서 이어진다. 꿈에서도 생각에 집중하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다시! 아니 이건 아니지! 그래 배경은 거실이야.. 여기 앉아있으면 되겠어..’ 어느 날은 영화 한 편이 거뜬히 만들어진다.
근데 알아버렸다. 생각이 많은 것은 미간의 주름을 깊게 만들고, 말이 많은 것은 잦은 실수와 약점 노출 위험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도 말도 줄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그런 어른을 바라니까. 어른에게 주름과 실수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생존을 위해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각본, 기획, 연출, 주연이 모두 나이다.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만 줄이면 나쁘지 않다. 내 멋대로 하면 되니까 말이다. 나의 성장은 모두가 내가 꾸며낸 이야기이다.
나는 또 몰래 생각에 빠져든다.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는데, 도로가 내 앞으로 솟아오른다. 지하세계에 살고 있던 외계인의 공격이 시작된다. 나는 그들을 따돌리며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들은 시공간을 모두 초월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머리부터 먹히기 직전에 내 공상은 끝이 난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늘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갑자기 날 공격하는 상상이라든지, 알고 보니 내가 어떤 어마어마한 초능력자던가. 로또 종이를 주웠는데 1등에 당첨되는 등의 대부분이 쓸데없는 생각들이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을 어떤 역할 속에 두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오늘은 온화한 선생님, 또 어떤 날은 엄한 선생님, 또 어떤 날은 웃긴 선생님이 된다. 나를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이건 그냥 쓸데없는 공상과는 거리가 있다. 나를 이미지화하는 일은 훨씬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크림빵을 좋아하는 나는 너무 어린애 취향처럼 보일까 싶어 어디를 가나 단팥빵을 좋아한다고 한다.
“단팥빵이 최고지!”
그리고 이것이 마치 사실인 양 빵집에 가서 단팥빵을 산다. 흰 우유와.
물론 최고의 조합이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흰 생크림이 꽉 차게 들어간 부드럽고 쫀득한 빵이다. 우유는 필요 없다.
아주 가끔, 진짜 ‘나’를 위로하고 싶어질 때 나에게 이 생크림빵을 허락한다.
이것은 가면이고 가짜 나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입고 싶은 옷이 달라지듯이 내가 나를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미성년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또 이상한 공상에 빠져있다.
영화 ‘미성년’ 어느 한 장면에 꽂힌 이후로 종종, 아니 자주 이 생각을 한다.
부모의 불륜으로 엮인 두 여고생이 엄마의 복중 아이가 유산되자, 태아가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유골을 어찌어찌 확보해 초콜릿우유에 타서 나눠 먹는 장면이다. 죽어서 태어난 동생을 먹음으로써 영원히 함께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이후에 줄곧, 한 가지 생각에 빠져있다.
‘그때 나도 우리 언니의 유골 일부를 나눠 먹었어야 했어.’ 그리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몇 번이고 유골함을 열어 회색 가루를 한 움큼 쥐어 우유에 타 마신다. 그리고 언니의 일부가 내 안에서 살아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최근에 나의 반려자에게 이 얘기를 했다. 누가 들어도 손사래칠 일인데, 그는 본인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나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절대 바다에 버리지 말라는 당부를 붙인다.
바다에 뿌려진 나를 물고기들이 뻐끔뻐끔 먹는 상상만 해도 공포심에 몸이 오그라든다. 바다에 버리면 무서워서 하늘로 솟아오를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며 다시 확인한다.
“날 바다에 뿌리지 마!”
다 쓸데없는 생각들.
엉뚱한 생각들로 어디로 튈지 나도 모른다.
#생존한 증인
최근 동료를 잃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나는 10월 24일 이전으로 수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교실로 간다. 선생님의 두 손을 꼭 잡아본다. 그리고는 곧 놓친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선생님과 생맥주를 마시는 내가 보인다. 술을 마시는 내 손을 잡아본다.
“그만 마시고, 선생님 얘기 귀담아들어 봐. 중요해! 지금 당장 학교 옮기라고, 어디든 도망가라고 말해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는 점이 된다.
내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져 전해지지 않는다.
가 닿지 않는다.
어른인 척 살았던 나. 어른이 되지 못한 나.
이제 미성년의 막을 내린다.
진짜의 시간을 마주해야겠다.
나는 동료교사 사망사건 살아있는 증인이다. 24년 차 교사인 나는 다 알고 있다.
누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는지 말이다.
아마도 내 시간은 잠시 멈출 것 같다. 그리고 멈춘 시간만큼 고인이 된 선생님에게 잠시 빌려주려 한다.
나는 생존한 증인으로서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