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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Oct 16. 2024

월담은 나의 힘_1

"담치기하는 어린이에서 소녀로"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봐야 아는 인간이다.

심장이 발에 달렸는지, 마음과 발이 동시에 움직인다.

이렇다 보니 눈앞에 위험이 뻔해도 내가 가고자 하면 가버린다. 

높은 담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말이다.      




기록할 만한 높은 담을 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정규수업 시간에는 정문을 제외하고 후문은 늘 잠겨있다. 그 잠긴 후문 너머에는 떡볶이, 튀김 등의 각종 분식을 파는 문구점이 있다. 그 맛있는 유혹을 어찌 이기리. 윤기가 좔좔 흐르는 꼬마김밥 속 당근이며 시금치며 단무지며 소시지며 치렁치렁 늘어진 자태에 시선을 뺏기고, 참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니 높은 담 따위가 뭣이 중요하겠는가?! 이 모든 유혹을 이기는 자가 있다면, 맛도 모르고 멋도 없는 사람일 테지. 점심시간이면 서둘러 도시락을 먹고, 홀리듯 후문으로 향한다. 함께 할 친구도 없고, 필요도 없다. 단신이 더 신속하다. 나아가 혼자서 몰래, 심지어 마음 졸이며 먹는 맛은 단연 최고다. 운동장의 모래 먼지와 시끄러움, 그 혼란을 틈타 담치기를 한다. 

아찔한 순간, 짜릿한 맛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면 새삼 ‘이 담이 이렇게 높았나? 내가 이걸 넘어왔나?’ 싶을 정도로 담은 더 높아져 있다. ‘이 담을 다시 넘느니 그냥 집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나란 인간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듯 나의 첫 월담은 꼬마김밥을 향한 식탐의 기록이다. 

아찔한 순간, 짜릿한 맛이다.      




등교하는 길에 정문으로 돌아가기 싫어 아파트 담을 넘다가 옷을 찢어먹고, 술래잡기를 하다가 잡힐 위기면 폴짝 뛰어서 담을 넘어버린다. 담을 넘는 나와 담을 넘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 확실한 구분이 즐겁다. 혼자만의 즐거움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철이 들었나? 더는 담을 넘을 일도 없었고, 담이라는 것이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게 성숙한 학생으로 잘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뜻밖의 순간에 월담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그날의 월담은 간절함과 두려움이다.


당시에는 열쇠 없이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시절이다. 많은 어린이가 목에 열쇠를 걸고 다녔다(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곳에 열쇠를 갖고 다니게 했다). 물욕이 없는 나는 물건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고, 열쇠는 잃어버리기 좋은 소지품이다. 내가 잃어버린 그 많은 열쇠가 쓸모를 찾지 못하고, 버려졌구나 싶으니, 마음이 좋지는 않다. 하여튼, 사라진 열쇠 덕분에 문 앞에 서서 다른 가족을 기다리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날도 내 주머니에 있어야 할 열쇠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었던 나는 다른 식구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당장 집에 들어가 일단 쉬고 싶다. 분명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을 것만 같아 집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처음 가보는 건물의 뒤쪽은 음침하다. 여기서 죽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발견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흔적은 없는데, 쓰레기가 가득하다. 이 쓰레기들은 모두 자기 발로 여기까지 왔을까? 인상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돌아서려는 순간, 쓰레기 사이로 보이는 게 분명 사다리다. 꽤 길다. 3층이었던 집의 창문에 조심스럽게 접근시켜 본다. 2층 창틀에서 우리 집 창틀, 그 사이에 사다리가 놓인다. 해볼 만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날의 나다.


휘어지는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래를 내려다보기 전까지 단숨에 중간까지 이른다. 역시 걸어온 길은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면 소금 돌이 된다고 했나? 아래에서 볼 때와는 다른 높이에 겁에 질려 그대로 얼음이 되고 만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빨리 받아들인다. 이제는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물러설 곳은 없어! 후진보다는 전진이 더 안전해. 눈은 앞에 달렸잖아.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다들 짜고 어디서  보고 있나? 그렇다면 와서 좀 돕죠. 살려줘~~~~

길고양이마저 안 보인다. 목격자 없는 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칸 한 칸 오른다. 조금 전까지만도 견고해 보이던 사다리가 나만큼이나 약해진 듯 느껴진다. 더 휘고, 더 흔들리며 나를 놓으려 한다.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듯하다. 나는 사다리가 옆으로 쓰러지게 될 경우, 잽싸게 사다리와 작별하고 멋지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체조 선수처럼 멋지게 착지하는 내 모습을 반복해서 시뮬레이션한다. 

‘조금만!’ 

조금씩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사다리는 끝났다. 한고비를 지나니, 새로운 위기가 엄습해 온다. 

‘창문이 잠겼다면?’ 

그럼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 길은 더 험난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것도 내려가는 일이 만만한 적이 없었다. 7살 때, 처음 놀이터 정글짐 꼭대기에 올랐을 때,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엄마가 올 때까지 울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또 어떤가? 오르면서 느끼지 못했던 근육의 구석구석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더 큰 피로도를 준다. 나는 영원히 사다리 끝에 매달려 7살의 나처럼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발끝에 힘을 주고, 팔을 내밀어 창문을 밀어 본다. 

‘열린다!!!’

창문 끝에 매달려 발을 살짝 들어 창문에 걸쳐 올리는 순간, 무게중심이 흔들리며 사다리가 옆으로 밀린다. 헉, 살겠다는 강한 의지로 나는 창문으로 몸을 내 던지다시피 매달려 상체를 구르듯이 집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왔다.

‘왔다! 집에!’

조금 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떨던 나, 집 안의 평온함이 낯설게 다가온다.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느낀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밀려오며 몸이 떨린다.

그리고 나온 외마디 “살았다.” 




목숨을 건 월담 이후로 나는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가 생겼고, 그렇게 이제 조용히 사나 싶었다. 군대 간 친구의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 전에는 말이다.     

20대가 된 나의 월담은 의리다. 그날의 기억 역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어떤 추억보다도 월담의 추억이 또렷한 이유는, 한계치를 넘나들며 박제된 짜릿함일까?

오늘의 월담은 여기까지. 담을 너무 탔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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