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만..."
내 사주로 말할 것 같으면, 오행(木火土金水)이 모두 있는 사주이다. 고스톱에 비유하면 큰 실수만 안 하면 피박은 면할 수 있는, 나름 괜찮은 구성의 패이다. 여러분도 녹색창에 만세력을 검색하여 내 사주팔자 정도는 알고 있자. 때때로 내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는지 정도의 기본 정보는 파악해 둬서 나쁠 게 없다. 태어난 시를 몰라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간, 즉 태어난 날이다. 태어난 날, “응애~!” 한 그 순간에 어떤 기운이 첫 호흡으로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날 첫 숨으로 들이마신 그 우주의 기운 말이다.
나는 임수(壬水)다. 봄에 태어난지라 여기저기 물을 퍼다 나르느라 사는 게 바쁘다. 물론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사주명리학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만, 내 인생에 있어 요놈의 점은 묘하게 따라붙는다.
5살이 되지도 못한 나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아니, 잃었단다. 아침마다 아빠를 배웅하고 잘 돌아오던 나였기에 엄마도 조금은 무뎌지던 어느 날이었다.
무려 70년대, 미아를 위한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집 전화번호, 부모님 성함 등 주입식 암기 교육을 일찌감치 받던 시절이다. 기댈 것이 어린아이들 암기력뿐이었다.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수 없었던 엄마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곳이 나올 때까지 총 7곳의 점집에 나의 행방을 물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집에서 정확하게 엄마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한다.
엄마는 그 말을 믿고 싶었고,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던 터라 집에서 전화기 앞을 지키고 앉았다. 7시가 막 되기 전,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파출소이다.
내가 경찰 아저씨 무릎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었단다.
그날 사건의 전말은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들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나름은 막내딸 실종사건이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금기시되던 그날의 이야기는 어느 명절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듯한 비장한 표정의 아빠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놀란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신지 80이 다 된 아빠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한 게 보인다.
“옛날에는 애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아이를 훔치는 일이 종종 있었어. 그 여자가 어린 네가 혼자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순간 충동적으로 널 안고 집으로 데리고 갔대.”
이때, 엄마가 끼어든다.
“네가 어려서는(그럼, 뭐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올망졸망 참 예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꼭 쳐다보고 갔다니까!”
아무도 이 말에 반응을 안 한다. 역시 악플보다 무반응이 더 아픈 법이다.
“엄마, 아무도 안 믿는 이 분위기 어쩔 거야. 그 얘기 좀 그만해.”
아빠 역시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네가 잘 놀더래. 그래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그러다가 저녁쯤 되니까 아빠를 찾고 밥도 안 먹고 하더란다. 그때 정신이 들었대. 그래서 널 파출소로 데려다준 거야. 다행히 네가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더란다.”
아, 그래서 그 시절 부모님들이 그렇게 엄마, 아빠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매일 외우게 했구나. 몰랐으면 난 어떻게 됐을까? 막내딸 실종사건 후로 엄마는 점집을 조금 더 자주 다니셨다.
나는 유난히 보약을 자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역술가의 말 때문이었다. 가는 집마다 그렇다고 하니 안 들었으면 몰라도 들은 이상 매우 찜찜했을 터다. 내 질풍노도 시기에는 지갑이나 속옷, 학용품 등에 몰래 숨겨둔 부적 때문에 엄마랑 싸우는 일이 잦았다.
부적 덕분인지, 보약 덕분인지 나는 꽤 건강하게 생존 중이다.
나를 도운 게 보약인지 부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단명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에게 도움이 된 확실한 지점이 있다. 바로 부모님의 심한 간섭이나 기대 없이 자유롭게 컸다는 점이다.
“그저 살아만 있어라! 너는 그냥 살아있는 게 일이다.”
컵을 깨도, 심하게는 넘어져 다쳤다고 울 때도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있으면 다 잘한 것이 되었다.
내 나이 열 살이 넘으면서 죽을 운명을 벗어났다. 정확하게는 연장이겠다. 누구나 죽을 운명을 타고나니 말이다. 어려서 이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의식이 생겼다.
어린 나지만, 기특하다.
새해도 오고 해서 친구가 보내준 무료 사이트에 들어가 신년운세를 보았다. 어린 시절 불운은 다 지나가 버렸는지 열 살 이후의 내 삶은 평온하였다(전적으로 내 기준). 그런 나도 본 적 없는, 정말이지 좋은 건 한 개도 없는 운세였다. 12달 꽉 채운 불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용 중에는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던 터라 더 찜찜했다. 꼼꼼하게 다시 보고 싶지만, 돈을 쓰고는 싶지가 않았다.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므로 말이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했다던 후배에게 무료 사이트 결과를 주며 신년운세를 다시 잘 봐달라고 했다. 찬찬히 살피던 후배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겠단다.
“물을 많이 마시세요, 아예 수영장을 다녀요. 물에 푹 빠져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불안하시면 검정이나 파랑 계열의 옷을 자주 입으세요.”
그러고는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성장의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좋다는 담임선생님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 빌어먹을 성장은 언제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다.
후배 말을 듣고 있자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미숙 님.
내가 사주명리학에 재미를 느끼고 입문하게 된 계기가 고미숙 작가님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이다. 아, 입문하였다고 하니 꾸준히 공부한 사람 같지만, 내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은 이 책에 모두 있었기에, 이 한 권으로 시작하고 끝냈다. 책에서 얻은 중요한 배움은 본인이 타고 태어난 여덟 개의 패가 아무리 좋아도 잘 운용하지 않으면, 피박, 광박에 독박을 쓰는 게 운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고난 팔자를 알고 잘 쓰면 누구나 운명에 끌려다니는 신세는 면할 수 있다. 후배의 말처럼 시련은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겠지 싶다. 불운은 항상 약한 틈을 타고 스며들기 마련이니.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어둠 뒤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타고난 운명을 잘 써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겠다. 운명을 쥐고 있는 건 결국 나이다.
일을 좀 망치거나 건강을 해치거나 관계 때문에 힘들어지거나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거나, 뭐 어차피 그리될 거라면! (오 소름, 지금까지 너무 맞네!)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매일 버벅거리며 배우고, 병원이랑 가깝게 지내고,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왕창 깨져도 보고, 어차피 나갈 돈 남에게 좀 베풀며 그리 운명을 쓰면 되겠지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끝까지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