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Oct 07. 2024

사주 보는 여자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 역시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면 몰라도 알면 신경 쓰이는 거 아닌가?


내 사주로 말할 것 같으면, 오행(木火土金水)이 모두 있는 사주이다. 고스톱에 비유하면 큰 실수만 안 하면 피박은 면할 수 있는, 나름 괜찮은 구성의 패이다. 여러분도 녹색창에 만세력을 검색하여 내 사주팔자 정도는 알고 있자. 때때로 내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는지 정도의 기본 정보는 파악해 둬서 나쁠 게 없다. 태어난 시를 몰라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간, 즉 태어난 날이다. 태어난 날, “응애~!” 한 그 순간에 어떤 기운이 첫 호흡으로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날 첫 숨으로 들이마신 그 우주의 기운 말이다.     

나는 임수(壬水)다. 봄에 태어난지라 여기저기 물을 퍼다 나르느라 사는 게 바쁘다. 물론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사주명리학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만, 내 인생에 있어 요놈의 점은 묘하게 따라붙는다.    


  



막내딸 실종사건


5살이 되지도 못한 나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아니, 잃었단다. 아침마다 아빠를 배웅하고 잘 돌아오던 나였기에 엄마도 조금은 무뎌지던 어느 날이었다.

무려 70년대, 미아를 위한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집 전화번호, 부모님 성함 등 주입식 암기 교육을 일찌감치 받던 시절이다. 기댈 것이 어린아이들 암기력뿐이었다.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수 없었던 엄마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곳이 나올 때까지 총 7곳의 점집에 나의 행방을 물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집에서 정확하게 엄마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한다.

“집에 가서 기다려! 저녁 7시쯤 전화 올 거야!”

엄마는 그 말을 믿고 싶었고,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던 터라 집에서 전화기 앞을 지키고 앉았다. 7시가 막 되기 전,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파출소이다. 

내가 경찰 아저씨 무릎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었단다.     


그날 사건의 전말은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들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나름은 막내딸 실종사건이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금기시되던 그날의 이야기는 어느 명절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듯한 비장한 표정의 아빠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놀란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신지 80이 다 된 아빠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한 게 보인다. 

“옛날에는 애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아이를 훔치는 일이 종종 있었어. 그 여자가 어린 네가 혼자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순간 충동적으로 널 안고 집으로 데리고 갔대.”

이때, 엄마가 끼어든다.

“네가 어려서는(그럼, 뭐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올망졸망 참 예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꼭 쳐다보고 갔다니까!”

아무도 이 말에 반응을 안 한다. 역시 악플보다 무반응이 더 아픈 법이다.

“엄마, 아무도 안 믿는 이 분위기 어쩔 거야. 그 얘기 좀 그만해.”

아빠 역시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네가 잘 놀더래. 그래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그러다가 저녁쯤 되니까 아빠를 찾고 밥도 안 먹고 하더란다. 그때 정신이 들었대. 그래서 널 파출소로 데려다준 거야. 다행히 네가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더란다.”

아, 그래서 그 시절 부모님들이 그렇게 엄마, 아빠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매일 외우게 했구나. 몰랐으면 난 어떻게 됐을까? 막내딸 실종사건 후로 엄마는 점집을 조금 더 자주 다니셨다.     


그리고 그 점집이 어딘지 진짜 궁금하다. 저녁 7시라니, 소름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


나는 유난히 보약을 자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역술가의 말 때문이었다. 가는 집마다 그렇다고 하니 안 들었으면 몰라도 들은 이상 매우 찜찜했을 터다. 내 질풍노도 시기에는 지갑이나 속옷, 학용품 등에 몰래 숨겨둔 부적 때문에 엄마랑 싸우는 일이 잦았다. 


부적 덕분인지, 보약 덕분인지 나는 꽤 건강하게 생존 중이다.

나를 도운 게 보약인지 부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단명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에게 도움이 된 확실한 지점이 있다. 바로 부모님의 심한 간섭이나 기대 없이 자유롭게 컸다는 점이다. 

“그저 살아만 있어라! 너는 그냥 살아있는 게 일이다.”

컵을 깨도, 심하게는 넘어져 다쳤다고 울 때도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응, 잘했어!” 

살아있으면 다 잘한 것이 되었다. 


내 나이 열 살이 넘으면서 죽을 운명을 벗어났다. 정확하게는 연장이겠다. 누구나 죽을 운명을 타고나니 말이다. 어려서 이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의식이 생겼다.

‘어차피 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이었어. 지금의 내 삶은 덤이야.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자!’


어린 나지만, 기특하다. 



2024년, 지지리 복도 없는 신년운세    


새해도 오고 해서 친구가 보내준 무료 사이트에 들어가 신년운세를 보았다. 어린 시절 불운은 다 지나가 버렸는지 열 살 이후의 내 삶은 평온하였다(전적으로 내 기준). 그런 나도 본 적 없는, 정말이지 좋은 건 한 개도 없는 운세였다. 12달 꽉 채운 불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용 중에는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던 터라 더 찜찜했다. 꼼꼼하게 다시 보고 싶지만, 돈을 쓰고는 싶지가 않았다.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므로 말이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했다던 후배에게 무료 사이트 결과를 주며 신년운세를 다시 잘 봐달라고 했다. 찬찬히 살피던 후배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겠단다. 

“물을 많이 마시세요, 아예 수영장을 다녀요. 물에 푹 빠져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불안하시면 검정이나 파랑 계열의 옷을 자주 입으세요.” 

그러고는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성장의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좋다는 담임선생님 같은 말을 덧붙인다.

하하.


이 빌어먹을 성장은 언제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다.      

후배 말을 듣고 있자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미숙 님.

내가 사주명리학에 재미를 느끼고 입문하게 된 계기가 고미숙 작가님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이다. 아, 입문하였다고 하니 꾸준히 공부한 사람 같지만, 내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은 이 책에 모두 있었기에, 이 한 권으로 시작하고 끝냈다. 책에서 얻은 중요한 배움은 본인이 타고 태어난 여덟 개의 패가 아무리 좋아도 잘 운용하지 않으면, 피박, 광박에 독박을 쓰는 게 운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고난 팔자를 알고 잘 쓰면 누구나 운명에 끌려다니는 신세는 면할 수 있다. 후배의 말처럼 시련은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겠지 싶다. 불운은 항상 약한 틈을 타고 스며들기 마련이니.     

  

“쫄지마!”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어둠 뒤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타고난 운명을 잘 써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겠다. 운명을 쥐고 있는 건 결국 나이다. 

일을 좀 망치거나 건강을 해치거나 관계 때문에 힘들어지거나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거나, 뭐 어차피 그리될 거라면! (오 소름, 지금까지 너무 맞네!)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매일 버벅거리며 배우고, 병원이랑 가깝게 지내고,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왕창 깨져도 보고, 어차피 나갈 돈 남에게 좀 베풀며 그리 운명을 쓰면 되겠지 말이다. 



곤란한 인생이라도 한바탕 펑펑 울고 나면 다음이 오지 않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끝까지 정신 차리자! 


이전 02화 축의금 환불 안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