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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26. 2024

만 9살 아이와 14시간의 비행

2024년 1월 4일(목)(1일째)-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

12월 내내 지난하게 이어온 감기가 두 번의 병원 방문과 총 9일 치 두둑한 약 봉투 덕분에 사라질 기미가 보일 때쯤 달력의 연도가 바뀌었고 우리의 출국 일도 다가왔다. 거실에 여행 가방을 펼쳐놓고 짐 싸기를 며칠째 하고 나니 어느덧 출발이었다. 여행 출발은 지방에 사는 우리였기에 공항버스를 타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는 4시간 이내가 걸려서 공항버스는 비행기 출국 시간보다 6시간 전으로 미리 표를 끊어놨다.


출국 전날이어서 짐을 다 싸고 밀린 빨래와 집안 곳곳을 점검하면서 항공사 사이트에서 출국 시간을 다시 확인했는데 예정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출발 시간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변경되면 미리 안내 메일이 오는데 왜 몰랐지 싶었나 하면서 당황스러웠다. 다시 메일을 확인하니 예전에 시간 변경 메일이 왔는데 미처 확인을 못하고 넘겼던 것이었다. 기존 예매한 공항버스를 타면 1시간 여를 남기고 공항에 도착할 듯해서 시간이 아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버스 회사도 알아보면서 시간을 찾는데 원하는 시간은 이미 다 매진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하는 공항버스 자리가 있길래 이걸 타고 가기로 해서 기존 표는 취소하고 다시 예매를 했다. 빠듯하게 도착하느니 차라리 일찍 도착하는 게 나을 듯했다. 벌써부터 여행의 변수가 방문해서 느껴진 쫄깃한 시작이었다.


저녁 식사로 오랫동안 한식을 먹을 생각이 없어서 묵은지 돼지고기찜을 만들어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떠나는 시간이 훨씬 빨라졌기에 아이는 빨리 재웠다. 최종 짐 정리를 끝내고 밤새면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와중에 아이가 나와서는 계속 뒤척이며 잠을 한숨도 못 잤다는 거였다. 여행 가는 게 너무 설레어서 그렇다는데 나이를 더 먹을수록 여행 가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갖고 나름 찾아보고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갔다. 집 떠날 시간이 되자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점검을 하고 왠지 모를 일말의 불안이 있었지만 걱정일 뿐이기에 털고 집을 나섰다. 꼭두새벽의 깜깜한 공기가 우릴 맞이한 거리는 이내 공항버스 터미널로 데려다줬다.                                                                      

동유럽 속으로 곧 출발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눈을 감은 우리는 3시간 30분을 달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데려다줄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몽사몽 일어나 눈을 뜨고 비틀비틀 걸어서 공항 안으로 들어다. 연예인들이 오는지 많은 사람이 대포 카메라를 들고 밖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쩍 물어보니 여러 연예인이 온다고 했다. 항상 출국 전에 식사하는 지하 식당에 가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일찍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아이가 뽑기 행사해서 얻은 쿠폰을 보태서 곧 생일인 아내 선물을 사고, 활주로를 오가는 항공기들을 바라보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몸이 편찮은 어머니에게 이륙하기 전 전화를 해서 건강 상태를 물었다. 계속 호전되지 않은 어머니 건강이 신경 쓰여서 출발하고 나서도 마음 한편이 계속 무거웠다. 오히려 멀리 여행 가는 우리에게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해주는 어머니 마음에 내리사랑이 느껴졌다. 부디 예전 함께 여행 가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는 소망을 바랐다.


오전 11시 30분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 우리는 중국, 중앙아시아, 카스피해를 지나 아제르바이잔 등 서아시아와 흑해를 거쳐 동유럽으로 진입해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을 지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현지 시간 오후 5시 30분에 도착했다. 14시간에 걸친 비행시간 속에서 영화를 내리 5편을 보고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간식을 먹고 나서야 내릴 수 있었다.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흑해를 잘 지나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는데 크림반도 밑으로 해서 중부 유럽으로 들어가는 노선으로 갔다. 아이는 비행기 타는 시간이 너무 설레었는지 타기 전부터 챙겨 온 레트로 게임기와 영화 볼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14시간 꼬박 졸지도 않은 채 본인만의 유흥을 즐겼다. 벌써부터 부모를 챙겨주는 면도 보여서 조금 놀라웠다. 아내와 아이는 컵라면까지 주문해서 긴 비행시간을 나름 잘 견뎌냈다.

14시간의 비행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공항에 도착하니 기내에서 'G선상의 아리아'가 나오는 게 바흐의 나라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처음 밟는 독일 땅은 여러 번 유럽을 와봤지만 다른 나라와 비슷하면서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시작될 우리의 이번 여행이 기대되었다. 이번 독일 여행을 세 단어로 요약하면 바흐, 괴테, 루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세 명의 영향력이 크고, 또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로 우리는 이번 여행을 기록할 것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착


프랑크푸르트(Frankfurt)는  헤센주의 최대이자 중심 도시로 브란덴부르크 주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와 구분하기 위해 혹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으로도 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마인 강을 붙인 건데 대개 프랑크푸르트하면 여기를 많이 떠올렸다. 인구는 약 70만 명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슷한 인구 규모지만 도시 인구가 적은 유럽 특성상 이 정도 규모면 상당히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역권 인구는 600만 명에 육박해서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도시이면서 대개 생각하는 유럽 도시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타 금융도시처럼 초고층 빌딩이 꽤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피해로 인해 파괴된 곳이 많아 새롭게 복구해서 볼만한 곳은 많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본래 가지 않을 곳이었으나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로 가는 또 다른 직항이 있는 뮌헨을 제치고 독일 첫 번째 방문지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 도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 연합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매우 전통적이고 대도시이기도 해서 통일 후 그대로 수도가 될 가능성이 있었으며, 동서독 국경 지대와 매우 가까워서 안보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서독 초대 총리인 아데나워가 본을 서독의 수도로 지지해서 결국 본이 서독의 수도로서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는 독일 경제의 중심지이며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연방은행, 독일증권거래소가 위치해 있는 금융 도시이기도 했다. 다행히 날씨기 비는 내리지 않고 흐려서 우산을 챙기지 않아 걱정되었던 우리에겐 첫출발로 괜찮았다. 공항에서 도시 철도를 타고 중앙역에 내리니 꽤나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 만화영화를 보면서 14시간 비행을 자지 않고 버텨서 체력이 거의 방전 직전이었다. 달래는 대신 체력 관리가 안되어 있는 거라고 말하며 스스로 챙길 수 있게 했다.


시내로 들어가기 위한 티켓 구입


우리가 묵을 호텔은 역 바로 옆에 있어서 엄청난 지리적 장점을 발휘했는데 장점은 그 위치가 전부인 곳이었다. 다소 낡고 허름하지만 신들린 위치 선정 덕분에 끊임없이 여행객이 오는 숙소 같았다. 이 호텔 말고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호텔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장사가 잘 되는듯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체크 인하는데 리셉션에 있는 직원이 이름을 2번이나 잘못 확인해 다소 늦어졌지만 무사히 객실 룸에 들어와서 감사의 안도가 나왔다. 우리는 내일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떠날 예정이라서 짐만 놓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프랑크푸르트 밤거리를 즐기고자 바로 나왔다.


야경이 멋진 뢰머 광장


목적지인 뢰머 광장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대마초 같은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며 쓰레기가 곳곳에 보여 깨끗한 나라 독일의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에 금이 갔고, 횡단보도 신호등을 잘 안 지키는 것을 보고는 선입견이 깨졌다. 15분 정도 걷자 사진으로만 보던 뢰머광장이 두 눈에 담기자 그래도 독일에 왔구나 하는 게 실감 났다. 우리는 기내식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이의 체력 충전을 위해 독일 소시지 핫도그를 사서 맛보았다. 탱글탱글하니 뽀드득하고 육즙이 터지는 게 삶은 소시지어도 맛은 있구나에서 독일의 이미지가 회복되어 갔다. 어차피 내일 오전에 이쪽을 다시 올 거라서 분위기만 느끼고 호텔로 돌아왔다.


독일의 첫 소시지 구입


씻고 나서 아이는 바로 곯아떨어졌고, 나와 아내도 장거리 비행으로 시작하는 첫날이라 다소 힘이 들긴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예전에는 아이를 마냥 챙기는 쪽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도 자기 몫을 하려 하고 나도 그렇게 시키려고 하니 우리 세 명의 역할이 나눠지는 듯했다. 해가 갈수록 아이와 세계를 걷는 의미가 깊어지는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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