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뭐야

by 이동장

숨막히게 길었던 연애가 끝나고.

집에 남아 있는 전 연인의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안보이는 구석에 치워버렸다. 너무 잦은 이별 탓이었을까, 너무 괴로웠던 마음 탓일까 이제는 눈물 한방울도 자취를 감췄다. 후련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이건 그냥 상실만 남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하루에도 몇번씩 당황한다. 그럼 하루에도 몇번씩 너를 생각하는 거겠지.


라이터 불같은 사람이 나타나고.

(칙) 손가락 한마디만 움직이면 나타나는 라이터 불같이. 너무도 가볍게, 쉽게 다가온 사람. '방금 막 헤어졌어요'의 시간에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찾아왔다. 거침없는 관심과 가벼운 듯한 말장난들에 오히려 벽을 느낀다. 아. 이게 맞는건가? 긴 연애 직후, 익숙하던 모든 것과 다른 사람의 정신없는 러브어택에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누굴 사랑했는지, 그냥 내가 누군지. 아무것도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랑과 자기혐오의 비례

사랑할수록 나는 작아졌다. 한낱 먼지보다도 못한 사람같았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럴수록 점점 의존했고,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건 더 없어졌다. 헤어진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도 못하고, 밥도 못먹고, 그냥.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상대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나 스스로를 갉아먹어야 했다.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이었고, 그가 먹고 싶은 것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이었으니. 이제 나는 스스로 생각조차 못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는 사랑할 수 없다.


LOVE WINS.

사랑은 이긴다.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추잡하고 고통스럽고 황홀해서 오히려 교활하다. 매번 나를 이겨버리는 사랑때문에 나는 매번 졌다. 나는 사랑을 이기고 나를 쟁취했어야 했다. 나는 사랑에 굴복해서는 안됐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너무나도 심하게 버렸다. 완벽한 사랑의 승리. 나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이제는 사랑과 싸우지 않을거다. 그러니 사랑은 영영 나를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나의 패배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사랑표

사랑때문에 세상의 벼랑 끝에 섰음에도 나는 또 사랑을 찾겠지. 아니. 사랑이 아닌데도 사랑이라는 이름표 하나 붙일 아무 곳을 찾겠지. 이제 사랑은 그냥 이름표일 뿐이라고. 내가 흔하게 부르는 누군가의 이름처럼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이름이라고 하자. 그러면 싸우지 않아도 되지? 우리 그냥 서로 아슬하게 붙어있는 이름표가 되자. 누구를 사랑해도 이름표 뒤의 진짜 나는 그대로 남겨두자. 이기지도 말고, 지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고 그냥 글자 그대로만 남아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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