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조금은 풀린 탓일까. 마음이 싱숭생숭의 끝판왕을 달린 하루였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하염없이 가라 앉았다. 요즘 들어 부쩍 내 더러운 기분의 원인을 "남자친구 없음"으로 돌리게 된다. 뭐 연애를 안한지 1년 즈음되긴 했지만, 그닥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는 안 된 것 같은데... 연애를 하면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망상은 20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사실 난 연애를 할 때보다 싱글일 때가 더욱 나다웠다. 연애를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 버튼이 눌려져, 친구와 가족, 지인들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엄격한 잣대를 남자친구에게 들이대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줘"라고 외치곤 한다. 남자친구를 마치 나의 욕구 불만을 풀어줘야 하는 대상마냥 여기는 것 같다. 연애를 하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도, 그 과정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또 다시 어딘가에 있을 '나의 짝꿍'을 찾기 위해 애쓰는 건 왜일까. 그냥 심심해서 놀 사람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애인 혹은 남편이 있는 친구로 부터 느끼는 박탈감 때문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사랑이 하고 싶은 걸까.
지금으로썬 3번 이유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깊게 빠져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라고 느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특별하다고 여겼던 사람도 사귀다보면 결국은 다 똑같았고, 그 사람을 대체할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겠지 싶었다. 이런 순정도 없는 사람! 겉보기와는 다르게 이렇게 냉소적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쯤은 미치도록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 분명 실현되기는 힘들겠지만, 우선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면서 상대방과 나의 손바닥의 크기를 맞대어 보고 싶다. 그 중에 나의 모양과 얼추 들어 맞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남자친구가 없다고 더 불행하거나, 있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응당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싱글 라이프에 불만족하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모든 관계의 가능성에 열린 마음을 갖되,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자. 못 가진 것에 연연해봤자 나만 괴로우니까, 내 손에 쥐어진 것들에 우선 감사하면서 살고 싶다. 돌이켜 보면 내가 우울해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행복해해도 모자랄 판이다. 직장 생활도 꽤 만족스럽고, 분당에서 자취 생활도 잘 꾸려가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가까이에 두고 읽을 책들도 많고, 날씨마저 내가 좋아하는 여름과 가까워지고 있다. 부디, 내 손에 놓인 아름다운 것들을 외면하고 음침하고 축축한 한낱의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오늘 우울한 이유는 여자들이라면 한 번씩 겪는다는 호르몬의 변화 탓이었다. 역시 모든 것은 호르몬의 문제. 적당히 흔들리고 적당히 중심을 잡아가는 3월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