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이 아픈걸 그럼 아프다고 하지 뭐라고 하나요.
“팔목 아픈데 좀 어때. 괜찮아?
어. 많이 써서 그렇다니까.
진짜 속상한건 뭔지 알아.
밥은 밥통이 해 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왜 아픈 거냐고 되레 묻잖아.
내가 요즘 별게 다 속상해. 이상해”
저는 김지영의 손목보호대가
참 가슴 아팠습니다.
제 아내도 손목 보호대를 하고
아이를 안았습니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의 상당수가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베이지색 손목보호대와
보라색 손목 아대를 보면,
살짝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래도 아이를 안아야하는
엄마들에게 참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엄마들은 아가를 낳으면서
갑자기 엄마라는 생각과 마음,
생활 태도를 강요받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단계 없이 바뀌는
생활이 있을까요.
갑자기 취업을 해서 회사를 갔다고 하더라도,
일단 퇴근하면 다시 자기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이건 뭐 아기를 낳았다고
여기 저기서 2~3일 정도 축하받고,
산후조리원에서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왔더니,
세상이 나를 다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독감 걸려 나도 간호하다 같이 걸려서
나도 아파 죽겠는데,
모두들 아가만 걱정합니다.
나도 너무 아픈데.
듣기는 했지만 이런 기분일지,
너무나 힘든 일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미워하기에는
남편의 삶도 그리 넉넉치는 않아 보입니다.
다른집 아가에 비하여
우리 아가는 뭔가 좀 느린 것 같고,
잘 크지 않는 것 같고,
자주 아픈 것 같고,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그 죄책감을 떠안기에는
아직 나도 너무 약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너무 힘든게 당연한 겁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집이나 똑같이 고민하고 있으며,
다정해 보이는 저 가족도 집에 가면
전쟁 같은 하루를 살고 있으며,
일도 육아도 살림도 척척 해내는 것 같은
어떤 엄마도 오늘 아침 너무 눈뜨기가 싫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엄마들과 대화해보았습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 없는 엄마 없고,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엄마 없었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가정에 미안해하며,
다른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것을 보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단코 우리만의 일이 아니며,
엄마의 어떠한 잘못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 분위기가 이렇고
우리들의 이러한 잘못된 사회 인식에 대한
비판과 저항, 희생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남편,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서로 감사하자고 얘기합니다.
갑자기 아빠, 엄마로 살아야 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나 아가로서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하지만 잘 커가고 있는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첫째 아이에게 제가 계란프라이를
양보하였더니, 우리 첫째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한번만 거절하고 이내 가져가서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혼잣말이라는 듯이 하는 말이,
“미안해하지 말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였습니다.
제가 어지간히 세뇌시켰나봅니다.
미안한 마음이 커지면 내 자존감이 낮아져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지만,
감사한 마음이 커지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정이 더 따뜻한 느낌이 들겁니다.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지금은 못 도와주네.
우리 남편이, 우리 딸이 도와줘서 고마워.”
서로 미안해하지 말고,
서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자신의 아픔보다는
가족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다음에는 엄마의 직업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