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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May 16. 2022

낮에 뜬 달 (에필로그)

밝은 빛 옆에서


 나는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이 궁금했다. 마치 그늘이 없는 광야에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 마냥 나를 발가벗은 것처럼 드러내는 햇빛은 피할 수 없다. 그 앞에 나아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낮달의 옆에서 비추는 햇빛을 무엇이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았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계기와 매개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나를 밝히는 햇빛은 신앙적 양심과 그에 따른 수치심이었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데아와 그러하지 못한 소돔과 고모라의 파업 선언.

 어떠한 모양이던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허리춤에 묶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자주 만났을 그 햇빛을 나도 만난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제각기 피하고 싶은 뙤약볕이 있다. 나보다 더 밝게 빛나는 사람을 향한 질투, 나의 연약함을 훤히 드러내는 트라우마와 자격지심. 우리를 지치게 하는 무기력함과 그에 따른 안 좋은 감정들은 피하려 해도 좀처럼 피해지지가 않는다. 외면하고 무시하려 해도 고개를 든다.


 그때마다 나는 그 빛 앞에 자존심과 허영으로 그늘을 쳐서 숨었다. 자존심을 부리고 허영으로 나를 포장해서 안 그런 척, 괜찮은 척을 했다. 그렇게 피하고 외면하고 못 본 척하는 게 능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아가 숨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했다. 그것 또한 나였다.




 그렇다고 그 빛과 싸우겠다며 덤벼들어 내 내면의 연약함에 뛰어든다면 이카루스처럼 날개가 타버려 추락할 것이다. 또한 너무 밝은 조명 빛 옆에 가까이 서있으면 이목구비는 다 날아가고 그 빛 밖에 안 보이듯이, 나는 안 보이고 그 연약함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빛과 약간 거리를 두고 비추는 것을 감당해 내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 빛을 받아내는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다.

 녹음이 칠해진 이파리에 비친 정오의 햇살, 찬장 위 군기가 바짝 든 그릇 옆을 스치는 오후의 햇살처럼.

 밤에 달이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처럼.






 어두워졌을 때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밝은 대낮에 그늘 밖으로 나온 용기이고 거기서 존재하기로 결정한 결심의 결과라 생각한다. 거기 있기로 정한 용기가 결국 고고하고 참 소중한 무언가가 되어준다.


 사람들은 달의 모양을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달이 비춰주는 달빛을 보고 달을 좋아한다.

 우리에게 비추어진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 당신의 오늘이 더욱 반짝거리길 바란다.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마치도 대지가 사계절의 돌아감에 동의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며 공간 속에 푹 파묻혀서

 하늘의 별들이 편안하게 위치하는

 그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이.

 - 릴케











‘낮에 뜬 달’ 과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kaliningra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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