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허락된 변화에 감사하며
1. 예상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이 허락됨에 감사
배수가 좋지 않은 화초가 몇 개 있어서 겨울이지만 분갈이를 해주는 중이다. 오늘은 작은 화분 두세 개 정도만 해주려고 간단하게 판을 벌리고 금방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분갈이를 마친 화분들을 일렬로 올려놓았던 대가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와장창 엎어지고 토분 몇 개는 산산조각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거실이 흙과 잔해들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다행히 화초들은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한편 동생은 값도 나가고 구하기도 힘든 귀한 흰 토분들 때문에 애가 타고, 조급한 나는 예상치 못하게 한참 소모될 시간과 에너지에 애가 탔다. 작은 일에서도 일부 성향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매사 실리적인 효율을 따지는 계산이 습관이 되어 있는 나와 이 순간 각별한 사물에 대한 애정만이 중요한 동생의 서로 다른 인지 습관인 것이다.
미뤄뒀던 나머지 화분들도 전부 엉망이 된 참에 깔끔하게 전부 분갈이하기로 했다. 덕분에 오후까지 내내 붙들게 되었고 닦아도 닦아도 끝없이 나오는 흙과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어차피 하게 된 일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했다. 우리 집에서 식집사는 동생이다. 나는 이따금 거들기는 하지만 그리 큰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지는 않는 편이라 따스하게 내리쬐는 겨울 오후 햇살과 흙냄새에 둘러싸여 우리 집 식구들을 하나하나 정성으로 챙기는 시간이 무척 여유롭고 좋았다. 전 클로로필 대원들이 제각각 어떤 형태로 무슨 빛깔을 띠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알기도 하고, 이파리와 뿌리 상태가 어떠했는지 꼼꼼히 살피기도 하고, 추운 베란다에서 거실로 임시 터전을 마련해 자리 배치도 새로 해주고, 모두 봄까지 건강하게 버텨주길 소망하기도 했다. 이런 작고 귀여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었을 다복한 시간이니 역시 미리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큰 행운을 거머쥐고 있는 셈이다.
2. 흔들리는 장대로 변화의 가로대를 넘는 연습의 나날들
여전히 새로운 자극이 방문할 때마다 출렁대는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올라타기 위해 노력이 바래지 않는 나날들이다. '출렁임'이 발생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리 예상할 수 없었거나, 예상했더라도 내면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익숙하지 않은 사태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겪어보지 못한 낯선 자극도, 외면하고 회피하던 시간 동안 채워져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던 무경험의 감정도,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 줄도 몰랐던 내면적 공식과 바탕계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오류를 마주하는 일도, 내 편협한 이성은 얼마나 가당찮다는 반응을 내비치며 놀라는지, 이게 사리에 맞기나 한 일인가 의구심을 던지고 머리를 절레 어깨를 으쓱한다.
내 뒤에는 믿음이 있소, 그 질의에 조금도 당혹스럽지 않은 척 숨겨진 재미의 비죽 나온 끄트머리를 끄집어내어 현시에 응답하고자 몰두한다. 나를 흔드는 모든 출렁임에는 버릴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내 게으름 탓에 어리숙해진 내면에서 경험 감각을 쌓아나가며 타당한 중심을 구성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행운이지 않은 것, 기쁘지 않은 것,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흔드는 모든 것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한 후, 그로부터 진리와 소통하는 시간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무질서 속을 유영한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법에 점점 능숙해지고 점차 내면에서 믿음의 공식을 체득해 갈수록 내일은 또 어떤 출렁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려진다. 단지 쾌적만을 위하는 평화가 아니라 내게 찾아올 갖은 자극들에 미래기대를 가지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하나의 화폭 안에서 아마도 결코 얌전하지는 않을 세상의 사건사고를 목을 빼고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