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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Feb 06. 2023

인간의 피톤치드

저는 이렇게는 못 다닐 것 같아요.

 두 서너달 전 겨울 시즌을 준비하는 10월경, 우리 회사에는 일이 쏟아졌다. 낮 시간 동안에는 점심식사만 겨우 하고 정신 없이 일했고 아홉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래도 작업이 밀려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 컨디션이 난조를 겪었고 까닭없이 짜증이 났다. 초년 직장인이었다면 일은 해내야 하니까 라는 식으로 이해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바쁜 일이 지난 후 회사에 이런 방식으로는 일을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직장으로 인해 일상 생활의 균형이 깨지는 것도 일에 삶이 휩쓸려 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일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이 많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사람을 더 뽑으셔야 한다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말을 하기 전에는 마음이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막상 표현을 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나를 위해 방어막을 친 것 같이 든든했다.

 나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정 능력이 있다. 바로, ‘피톤치드’를 방출하는 것이다. 피톤치드(Phytoncide)란 나무에서 방산(放散)되어 주위의 미생물을 죽이는 물질이다. 나무가 외부로부터 공격 당할 때 발산하는 피톤치드는 나무에게도 이롭지만 사람들에게도 이롭다. 수 많은 연구들이 피톤치드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스트레스 감소, 심신 회복, 힐링의 효과가 증명되었다.

 사람들은 숲을 거닐며 산림욕을 하고 피톤치드를 경험한다.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피톤치드란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숲의 공기인 줄만 알았지 나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방출하는 공격적인 물질인 줄은 몰랐다. 나무의 공격적인 물질이 인간에게는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니, 나무의 베풂은 어디까지 인가 라는 감탄마저 삼킨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처럼 사람에게도 외부에 맞서 싸워 자신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일상 생활에서 작은 용기를 내어 나를 위한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엇보다 먼저 '공격적인' 청소를 한다. 집 전체는 못하더라도 내 방만큼은 손으로 북북 걸레질을 한다. 낡은 수건을 반으로 잘라 만든 걸레로 방바닥을 닦아 내고 반질반질해진 방바닥을 딛고 있으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뿌듯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사라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한두 가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 태세는 가지고 있다. 대충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각자의 환경 속에서 자기 보호의 결계를 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려한 옷 속에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예의 바른 말 속에 가시를 담아 상대방을 후려치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공격의 수위가 조절되지 않아 타인의 눈에 띌 수도 있고 스스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에게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은 채 분노의 미사일을 퍼부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 관계를 잃을 만큼 위험 천만한 순간이 찾아 오기도 한다.

 자기 방어가 자칫 너무 큰 공격으로 변질되어 상대방을 혹은 자신을 아프게 할 때도 있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날을 세우기도 해야 하는 험한 세상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나와 타인에게 면죄부를 전하고 싶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돌보지 않으면 얼른 조치를 취하라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다행인건 조금만 노력하고 상처에 빠르게 반응하면 금새 나을 수 있다. 욱신거리던 상처도 반찬고 하나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통증을 멈춘다.

 직장에서의 나의 입장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바쁜 시즌이 지나간 후 일이 줄어 사람을 더 뽑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다시 한번 정신 없이 일하는 상황이 온다면 사람을 충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장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꽃이 나에게 말을 걸다' 는 매주 화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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