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준비물에 함께 담긴 것.

by 갈리버



취학 통지서가 나왔다. 아직 초등학생 학부모로 살아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설레는 마음과 함께 두려움도 밀려들어왔다. '응애 울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와 같은 감상 같은 건 잠깐일 뿐, 금세 현실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하교 시간이 이르다던데, 도대체 몇 시에 집에 오는 거지? 그래도 밥은 먹고 오니 다행이다. 학원은 어디로 보내지? 가방은 어떤 걸 사야 해? 신발주머니도 사야 하나? 애 등교하고 돌아서면 하교시간이라던데, 내 시간은... 있긴 한 건가?



복잡한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예비소집일이다. 학교에서 나눠준 책자에는 아이가 입학식에 들고 와야 할 준비물 목록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온 가족이 문구점에 갔다. 장난감도 팔고 문구도 파는 대형 쇼핑몰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장난감이 아닌 학용품을 샀다. 문구 덕후인 엄마와 아빠는 그 순간이 무척 설렜다. 그 와중에 남편은 은근슬쩍 아이의 물품들 가운데 본인의 연필 몇 자루를 집어넣었다. 한 자루에 무려 천 원이 넘는 건데 사도 되냐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내가 입학시키는 게 아들인지 남편인지 잠시 헷갈렸지만, 기분이다. 진행시켜!






학부모로서의 첫 작업은 이름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다. "아들인데 얌전하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 아들이지만, 아들은 아들이다. 남자아이의 소지품 관리에 대해서는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 학교에서 추천해 준 사인펜을 검색해 보니 무려 이름을 각인까지 해서 파는 쇼핑몰도 있었다. 이름 스티커는 떼어질 우려가 있지만, 각인을 한다면 그럴 걱정이 사라진다. 신박한 아이템에 솔깃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과연 이름 스티커 떨어지는 게 먼저일까, 아이가 사인펜을 잃어버리는 게 먼저일까 고민해 보니 쉽게 답이 정해졌다. 나는 묵묵히 이름스티커를 붙였다.



학교에서 정해준 준비물 외에 엄마들마다 개인적으로 더 준비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사물함 정리 용품을 따로 넣어주기도 한다. 입학식날 바구니를 가져와 아이의 사물함을 정리하는 엄마를 보고 나도 다음날 아이의 공책과 색연필을 세워 보관할 수 있도록 바구니를 아이 편에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제대로 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역시 선배 엄마들을 보고 배워야 하는구나. 과연 학부모의 삶도 내공을 쌓아가야 하는 영역이었다.



초보 중의 초보인 나도 나름대로 준비한 나만의 잇템이 있었다. 바로 연필캡이다. 아이가 7살 때 유치원에서 원에 두고 쓸 필통과 연필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1년 뒤 졸업을 앞두고 아이가 다시 집으로 가져온 필통은 가관이었다. 숯을 발라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필통 안은 연필심으로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멀쩡한 연필만 담겨도 더러워졌을 필통이, 부러진 연필심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했던 탓에 난리가 났던 것이다. 나는 부러진 연필심과 새까매진 지우개를 빼고서는 곧장 문구점으로 달려가 연필캡을 구매했다. 성취감은 아이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자라게 하는 것이던가. 아직까지 무사한 아이의 필통을 보며 스스로 기특해하는 중이다.






나는 여행 떠나기 전 항공권과 숙소를 결제할 때 가장 설렌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입학하기 전 준비물을 마련하던 이 순간이 가장 설렜다. 여행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간다고 해도 변수는 늘 존재한다. 아이의 학교 생활도 그럴 것이다. 입학 전 준비물을 정성 들여 준비한다고 해서 아이의 순탄한 학교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준비하면서 설레던 마음은 남는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 가운데 중요한 건 기대하는 마음이다.


입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물티슈를 챙겨가더니 가방에 넣어둔 학용품들을 모두 꺼내 일일이 닦아댔다. 학교에 깨끗하게 가져가야 한다며 학용품을 닦더니 다시 책가방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준비물을 마련하며 설렜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던 걸까. 엄마가 이름 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이며 마음을 다스렸듯, 아이도 물티슈로 학용품을 닦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우리 둘 다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여행을 준비 중이다. 설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꿀팁 전수. 연필캡은 꼭 투명한 걸로. 사용량 체크하려고 매번 열어보는 수고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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