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 선수가 되었다.

by 갈리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여쯤 지나 운동회날에 뛸 학급 대표 달리기 선수를 뽑는다는 알림장이 왔다. 남자 여자 각각 두 명씩 총 네 명을 뽑았다. 학급 인원수도 많지 않은 데다 아이가 제법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아 내심 대표로 뽑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정작 아이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운동회도, 계주도 어떤 건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내색은 안 하면서도 기왕이면 잘 달렸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그날 아이에게 축구화를 신겨 보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별 말이 없길래 안 됐나 보다 하고 무심한 척 툭 질문을 건넸다. "나 달리기 대표 됐어. 남자 2등 해서." 아이는 나보다 더 무심하게 대답했다. 반가운 마음을 숨기고 담백하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이는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퇴근한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축하의 말을 건네자 아이의 얼굴에 점점 뿌듯함이 자리했다.



아이가 계주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내 학창 시절 기억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동안에는 난 늘 학급 대표 계주였다. 그냥 뛰라니까 열심히 뛰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척 즐거웠다. 내리쬐는 햇살, 넓은 운동장, 하얀 머리띠와 바통, 운동장 가득한 흙먼지, 그리고 친구들의 응원소리. 이기고 진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사소한 경험으로 인해 학교가 얼마나 더 즐거워졌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학교에 소속감을 느끼고 애정을 갖게 되는 데는 다양한 계기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계주 선수로 뽑혔던 것이 그중 하나였다.

"달리기 잘하겠는데요. 발목이 얇잖아요."

"발목이 얇으면 달리기를 잘하나요?"

"발목 두꺼운 말 본 적 있어요? 말들 봐요. 발목이 다 얇아요. 말들은 잘 달리잖아요."

어느 병원에선가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시며 발목이 얇아 잘 뛰겠다는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선천적으로 몸이 그렇게 태어났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더 이상 빨리 달릴 수 없게 된 데는 아무래도 살이 문제였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몸에 살이 포동포동 오르기 시작했고, 나의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어졌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딱 한 번 계주로 더 뽑힌 일이 있었다. 당시 여학생으로만 이루어졌던 우리 반은 두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사이가 안 좋은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계주를 뛰게 되어 꽤 불편한 상황이었다. 연습을 하긴 했지만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승부욕 하나는 끝내주는 친구들이었기에 다들 전력을 다해 뛰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무리의 한 친구가 먼저 달렸다. 열심히 달리는 것에 비해 등수가 점점 뒤로 밀렸다. 드디어 3번 주자인 내 차례였다. 바통을 이어받았다. 앞서 달리던 주자의 등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 명을 제치고, 내친김에 또 한 명을 제쳤다. 마지막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고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서 몇 등이었냐면,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건 사이가 좋지 않던 그 친구가 건넨 한 마디뿐이다. “갈, 수고했어. 잘 달리더라.”

청춘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가 따로 없는 친구의 한 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빛나는 학창 시절, 뜨거웠던 계절에 바통을 주고받았다는 연대감 때문일까. 친구들 무리끼리는 여전히 사이가 안 좋았지만 그 친구와 나는 어색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역시, 스포츠에는 낭만이 있다.


아이의 첫 체육대회 날, 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치열한 경기가 이어졌다. 대망의 마지막, 계주가 시작됐다. 각 팀별로 남자 선수 10명, 여자 선수 10명이 번갈아 달렸다. 아이는 남자 4번 주자였다. 바통을 놓치진 않을까, 달리다 넘어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바통을 쥔 아이는 그 시절 나처럼 열심히 달렸고, 무사히 바통을 넘겼다. 이어지는 주자들의 실수와 역전으로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레이스가 펼쳐졌다. 1학년 계주가 이렇게 박진감 넘칠 수가 있냐며 학부모들은 감탄했다.

아마 나처럼 아이도 이날의 결과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결과 대신에 아이는 이날의 뜨거운 햇살, 넓은 운동장에 가득한 모래 먼지, 연보라색 반티, 파란색 바통, 친구들의 응원소리, 그리고 발갛게 상기된 볼을 기억할 것이다. 삶을 살아지게 하는 힘은 의외로 사소한 기억에서 올 때가 있다. 살면서 낭만이 필요한 순간마다 아이가 이날의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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