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간 쌓아온 티켓팅 스킬의 쓸모.
돌아서면 하교 시간이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1학년의 시간표를 받아 드니 정신이 아찔했다. 아이는 앞으로 빠르면 12시 40분, 늦어도 1시 30분에 하교를 한다. 등교 후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일도 조금 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리려는 순간 아이의 하교 시간이 다가온다. 아이를 맞이한 이후의 시간은 엄마가 직접 시간표를 짜야한다. 그것이 아이가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다.
오늘날 초등학교는 늘봄 시스템으로 돌봄 교실, 방과 후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으니 방과 후 수업만 신청하기로 했다. 아이의 다양한 경험을 모두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방과 후 수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방과 후 수업 신청은 속도전이다. 인기 있는 과목은 순식간에 마감이 되므로 빠른 손놀림이 관건이다. 다년간 야구와 콘서트 등의 티켓팅으로 실력을 다져온 나지만 방과 후 수업 신청은 처음이다. 인터파크도, 티켓링크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e알리미’. 낯선 시스템에 긴장감은 배가됐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렸다.
며칠 뒤, 드디어 시간표가 공개됐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시간표를 분석에 돌입했다. 요일별로 1순위, 2순위를 체크하고, 아이의 취향과 엄마의 바람을 담아 신청할 과목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5개의 수업과 실패 시 재도전할 후보 선택지를 정했다. 어플로 예행연습도 끝냈다. 준비는 완벽했으니 남은 건 실전이다. 드디어 티켓팅으로 다져진 나의 실력을 뽐낼 때가 되었다.
수강신청 시간은 학교마다 다르다. 아이의 학교는 저녁 9시에 신청을 받았다. 하필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을 시간이었다. 잘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책을 챙겨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특별히 태블릿과 핸드폰도 함께 챙겼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한쪽엔 네이버 시계를 띄운 태블릿을 슬쩍 두었다. 첫 번째 책을 읽었다. 8시 58분. 두 번째 책을 읽기에 앞서 나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강신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8시 59분 50초... 51초... 59초... 9시!
외워둔 수업 번호대로 다섯 개를 체크하고 재빠르게 회신 버튼을 눌렀다. 잘못해서 다른 번호를 체크하기라도 하면 실패다. 그간 손가락이 삐끗해 날아간 티켓이 몇 장이던가. 스피드 싸움에서 작은 실수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클릭.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과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확인이 가능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결과를 확인했다. 모두 성공이었다. 대기로 넘어간 것도 없이 정원 내 안착에 성공했다.
"와!! 성공!!"
나도 모르게 양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도파민이 폭발해 버린 엄마의 모습을 어리둥절 바라보다가 이내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동안의 나의 덕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세상에 의미 없는 덕질은 없다!
epil. 방과 후 수업 신청의 뒷 이야기
5개 과목을 모두 성공했지만 현재 아이는 총 3개의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의 하교 시간과 맞지 않아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금요일 수업은 취소했다. 또 아이의 강력한 바람에 따라 축구학원에 가기 위해 하나를 더 취소했다. 내가 포기한 수업이 대기 1번으로 마음 졸였을 어느 가정에 작은 기쁨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