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공부하기-'메밀꽃 필 무렵' (1)

-이효석 작가 소개

by Kalon


메밀꽃 필 무렵1.png

- 작가 소개

이효석(李孝石). 1907~1942. 일제강점기 소설가.


배경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교직에 있던 아버지 이시후(李始厚)와 어머니 강홍경(康洪卿)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학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한 이효석은 1914년 평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하숙 생활을 시작했다. 본가에 다녀올 때면 100리가 넘는 거리를 오가게 되었는데, 이는 훗날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물놀이와 고기잡이, 꽃놀이를 즐긴 경험, 그리고 특히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목기류(木器類) 행상과 심마니, 머루와 다래 같은 산과(山果), 꿀 뜨기, 농산물 품평회 등의 기억은 후에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1920년 일등으로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일제 당시 조선의 최고 명문이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5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제2회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전공으로 영문학을 택한 그는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잡지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0년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활동

1931년 동성동본(同姓同本)이라 집안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경원(李敬媛, 1914~1940)과 결혼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으로 닥친 불황 덕에 작가 이효석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경성고보 은사였던 일본인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양심의 가책과 주변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불과 보름 만에 사직하고 말았다.

화려한 도시 경성에서의 비참한 도시 빈민의 모습을 그린 대학 시절의 등단작 ‘도시와 유령’, 그리고 소련을 그리며 가고자 하는 내용인 ‘노령근해(露領近海)’ 등에서 보이듯, 활동 초기 이효석은 사회주의 경향이 짙은 작품들을 썼다. 그러나 1932년 처가가 있는 함경북도로 내려가 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해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뒤로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되었고 작가로써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향토적·이국적·성(性)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시적 문체의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1933년에는 경성제대 후배들과 함께 순수문학단체 '구인회(九人會)'에 창립 멤버로 가입해 활동했다.

1934년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평양으로 이사하였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추게 된 이효석은 1936년에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신사(神社)참배 거부로 숭실전문학교는 폐교되었지만, 이효석 본인은 그 자리에 다시 세워진 대동공업전문학교에서 교수직을 이어 맡았다.

1940년, 1남 2녀에 이어 막내아들 영주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 해 갑작스럽게 새로 태어난 아들과 아내가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젊고 건강하던 그였지만 큰 충격을 받고 이듬해인 1941년 뇌막염에 걸려 대수술을 받았다. 병으로 고생하던 이효석은 1942년 평양도립병원에 입원했으나 곧 불치진단을 받았고, 35세에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1982년 10월 문화의 날을 맞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업적과 평가

그의 저작 활동은 100편에 가까운 단편에 집중되어 있으나, 장편소설, 시, 수필, 평론, 희곡·시나리오, 번역 등 다방면의 작품도 발표하였다. 단편 대표작으로 ‘노령근해(露領近海)’, ‘해바라기’, ‘이효석 단편집’ 등이 있다. 장편으로는 ‘화분(花粉)’, ‘벽공무한(碧空無限)’ 이 있으며 이 중 ‘화분’은 1972년 영화화되었다. 110편이 넘는 수필을 발표하여 당대에는 수필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낙엽을 태우면서’가 대표작이다. 영화광이라 전하며, 직접 희곡과 시나리오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사실 ‘메밀꽃 필 무렵’을 포함한 단편 몇 개를 제외하면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특히 장편들은 평이 나쁘다. 소설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서사를 도외시하고, 잘 다듬어진 말과 암시, 상징, 복선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 성향 때문이다. 이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기법으로, 작가 김동리는 이런 이효석을 두고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 리 길에 대한 묘사는 두고두고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꼽힌다. 향토적인 어휘와 서정적인 문체, 복선과 암시를 통한 기교, 자연과 인간이 맺고 있는 신비로운 조응(照應) 관계, 독자가 상상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 등은 이후 김동리와 황순원 같은 순수문학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한국 서정 소설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효석이 친일 활동을 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1966년 ‘친일문학론’ 등지에서 거론됐고, 이후 반민족문제연구소(현 민족문제연구소)가 이걸 보강하여 1993년에 낸 한국의 친일파 99인에서도 채만식, 김동인, 홍난파 등과 같이 문학예술 분야 친일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면서 호강을 부리다가 그만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으나, 먹고 살고자 다시 왜놈에게 아첨하는 글을 쓰는 건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오."라며 자신의 친일활동을 솔직히 고백하고 수치스러워하던 일화를 소개하며, 김동인이나 최남선 같이 거리낌 없이 친일 활동을 한데다 후회나 사죄도 없었던 이들보다는 낫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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