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말 안하려다가 성질나서 결국 하고 마는 얘기.
나는 왜 하루키로부터 돌아섰나.
#하루키론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 팬인데”로 글을 시작하는 사람들, 속칭 하루키 팬들을 믿고 거르라는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돈다. 슬프게도 그 말에 반론할 수가 없다. 이 말을 하는 나는 사실 초기 작품에 대해서는 지금도 하루키 팬이기는 하다. 에세이도 잘 쓴다. 음담패설 때문에 영어로 번역 안된 건지 뭔지 몰라도 여튼 나는 그런 허술한 에세이들도 거부감이 없다. 되려 에세이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여튼.
기준은 딱 한 작품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다.
이 작품 이전의 작품들 즉 초기작들 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좋아하는데 몇 년 전, 최근작 중 하나인 1Q84를 읽었다. 아무리 봐도 익숙한 설정들. 아이템들.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자기 자신을 표절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얼마 전 <태엽 감는 새>와 <댄스댄스댄스>를 연이어 읽고 나니, 하 <댄스댄스댄스>..... 그는 딱 어느 정도 잊혀질 만하다 싶으면 과거에 썼던 아이디어를 재탕하고 있었다. <하드보일드>와 <댄스> 그리고 <1Q84>까지...... 그가 독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모르나 그 우스운 독자들 사이에 나를 끼워넣지는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루키의 팬이 되려면 대충 한두 작품 읽고 반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상실의 시대>이후 작품들만 보거나 아니면 그 전 작품들만 보거나 해야 헌다는 것. 그의 작품을 시기별로 다 훑고 나서 소설가로서 그의 팬이 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더해 그가 현실에서 철저히 유리된 세계를 현실인 척 다루는 사실상 판타지 작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식으로 현실과 유리된 (그러나 현실인 척하는) 세계를 다루는 작품들을 보는 게 좀 언짢아졌는데, 그런 작품들이 재미는 있다. 하지만 재미 이상의 가치를 선사하는 판타지도 많은 세상에서 그의 재미난 판타지는 더 이상 내게는 와닿지 않는다. 페이지가 수월하게 넘어간다는 미덕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스웨덴 한림원이 바보들 소굴이 아니다. 하루키한테 상 안 주는 거 보니 확실하게 알겠더라. 한강이 받을 만해서 받은 거 맞다. 그리고 말나온 김에 번역 논란에 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그 한강 작가님이 심하게 의역을 해야 할 만큼 문장이나 내용을 난해하게 쓰시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번역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원서에 없다는 뜻이다. 재미로 듣고 웃는 루머 이상으로 심각하게 잘못된 루머가 퍼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한 마디 보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