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두 조카를 돌보고 현실에서의 직장업무와 작가로서의 작업까지 병행하느라 과로를 한 탓이었을까. 지독한 감기몸살로 두 주를 넘게 고생한 후, 간신히 일상의 리듬을 찾은 지금도 부르튼 입술을 한 채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러는 동안 인형들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4월 초순인데 아직도 겨울에 입힌 스웨터를 걸친 쪼꼬미를 보시라.
그런데다가 그 나이 먹도록 인형이나 잡고 있느냐는 주위의 한심해하는 시선들이 어느 때보다 고달프게 여겨지기도 한다.
때로는 인형이나 책이 사람보다 나를 덜 외롭게 한다는 걸 그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들이 나빠서도 사람이 나빠서도 아니다. 그냥, 괴팍하고 고집 센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무리 가꾸어도 전처럼 아름답지 않은 내 모습을 의식하면서 인형의 아름다움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대리만족적 위안이 되어간다. 세월이 그들을 낡게 할지라도, 세월이 나를 낡게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당장 나는 오늘 엉망진창이 된 내 얼굴에 크림을 잔뜩 바르고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20대를 돌려달라며 거울 앞에서 소리없이 절규해야 했으니까.
그런 자괴감과 현실에서의 잡다한 충돌로 어스러져가는 일상에서, 인형이 주는 아스라한 엷은 위안이 피부 밑으로 녹아든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서글픈 위안을 가슴 밑바닥에 남기면서.